ESSAY ON SOUND
낮고 작은 소리가 더 큰 울림을 줍니다
낮고 작은 소리, 고요한 리더십
글. 김창옥(김창옥 휴먼컴퍼니 대표) 그림. 김윤희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것보다 주의 깊게 듣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큰 조직뿐만 아니라 작은 모임과 가정에서도 사람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 다름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을 아우르는, 낮고 작은 소리로부터 비롯되는 고요한 마음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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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몸살로 내과 진료 후 주사 처방을 받았다. 다 큰 어른이라지만 주사를 맞는 건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로 주사실에서 간호사를 기다렸다. 곧 이어 젊은 간호사가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말했다.
“벗으세요.”
간호사의 단호한 어투에 순간 당황해서 얼른 소매를 걷어붙여 올렸다.
“아니, 팔 말고 바지요.”
아무리 진료 때문이지만 처음 만난 이성 앞에서 바지를 벗는 것은 너무 민망한 일이어서 어찌할 바 몰라 하며 엉거주춤 바지를 내렸다.
“더 내리세요.”
내린다고 했는데도 아니라는 소리를 들으니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간호사는 처음보다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긴장하지 말라는 말과 반대로 몸은 오히려 힘이 잔뜩 들어갔고, 주사 맞은 자리가 얼얼하더니 나중에 보니 피멍이 들어있었다. 간호사가 말로는 긴장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단호한 어조 때문에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긴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의 내용도 전달받지만, 말하는 이의 감정도 고스란히 느낀다.
내 대학에서의 전공은 성악인데, 학부 때 들었던 지휘 수업에서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 내는 다양한 표현을 배울 수 있었다. 마침 합창대 부지휘자로 합창대회를 준비할 때였다. 일정이 각각인 여러 사람들과 연습 시간을 맞추다 보니 하필 어두컴컴한 새벽에 모이게 되었다. 목소리가 다들 잠겨 있어 좋은 소리를 내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노랫소리는 몸통을 울리며 성대를 거쳐 입으로 나오기 때문에 몸이 잔뜩 긴장해 있다거나 굳어 있는 상태에서는 좋은 소리를 내기 어렵다. 좀 진지한 노래는 몸이 긴장한 상태에서 불러도 티가 좀 덜 나는 편인데, 즐거운 노래는 몸의 상태에 따라 노래가 확연히 달라진다.
겨울 아침,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데다 모두들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지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원들에게 즐거운 감정을 일깨워야 하는데, 당신이 지휘자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자. 사람들은 단상 위로 올라 선 지휘자의 손끝에 집중하고 있다.
“날이 추워져서 옷장에서 지난해 입던 겨울옷을 꺼냈습니다. 겨울점퍼 안주머니에 무심코 손을 넣었는데 바스락 소리가 나는 거예요. 만 원짜리가 한 장 들어있네요. 자 그때 여러분 의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 표정으로 시작해볼까요?”
지휘자의 이야기에 갑자기 합창대에 웃음이 일렁인다. 얼어 있던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하는 거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대회 당일이었다. 다들 잔뜩 긴장해서 지휘자의 손끝에 집중하고 있다. 그 순간 지휘자는 손을 안주머니에 넣는 몸짓을 취한다. ‘긴장하지 마세요!’라는 의미를 말로 직접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번 ‘만 원’의 에피소드와 함께 가쁜 호흡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긴장이 누그러진다.
회사나 가정, 작은 공동체나 각종 소모임에서 우리는 지휘자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내 손끝에 분위기가 좌지우지 될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할 수 있을까? 올해 상반기 우리 사회에서는 안전과 불안을 조장하는 일련의 사태가 발생했다.
두려움이나 긴장이 아닌 여유와 웃음을 이끌어 내는 지휘가 우리 삶의 현장 곳곳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
긴장보다는 낮고 작은 소리로 이완할 수 있게 만드는 리더십이 중요한 때이다.
글 김창옥
김창옥은 김창옥휴먼컴퍼니 대표이며, 기업체와 전문 산하 기관 등에서 소통 전문 강사 및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 책임 강사를 역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나는 당신을 봅니다』 『소통형 인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