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OF SOUND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삶이 보입니다
생(生)의 역동적 소리들
글. 이승원(인천대학교 교수)
씻고, 자르고, 끓이고, 굽는 부엌의 소리, 목청껏 외치는 장터의 물건 파는 소리, 사무실에서의 대화나 전화 통화 등은 삶의 활력을 환기시킨다. 도시 근대화를 이끈 증기기관차 소리, 지하철 안의 각종 삶의 소리, 경기장의 함성, 공연장의 박수, 시대를 이끈 사회 무브먼트의 외침 등. 근대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만들고 이끌었던 소리를 통해 생은 늘 역동적으로 굽이치고 있음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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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공항에서 문명의 소리를 상상하다
내 집 근처에는 고속화도로의 소음을 막는 높은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다. 여름이면 테라스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 집 안의 열기를 식힌다. 자정이 넘어 인적도 끊긴 동네에는 달빛으로 아늑한데, 가끔씩 방음벽을 넘어 내 거실까지 침입하는 자동차 소리를 듣는다. 소음이라면 소음일 수도 있으나,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듣자면 이 늦은 시간에도 생은 이토록 분주하다는 생각에 잠긴다.
음치에 박치까지 골고루 갖춘 나지만, 나는 소리와 청각에 예민한 감각의 촉수를 지닌 편이다. 가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환승공항을 거친다. 전광판에 빼곡하게 적힌 비행기 시간표를 보며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환승공항은 언제나 왁자지껄하다.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대신 사람들의 무늬로 가득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들의 소리를 듣곤 한다.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재잘거림, 마음보다 먼저 굴러가는 캐리어 바퀴 소리, 환승 안내방송 소리, 헐레벌떡 환승 게이트로 뛰어가는 여행객의 발자국 소리 등등.
환승공항의 ‘분주한 소리’를 들을 때마다 100년 전 남대문 정거장(현재의 서울역)이 떠올랐다. 이광수는 『무정(1917)』에서 남대문 정거장의 풍경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차가 남대문에 닿았다. (중략) 전차 소리, 인력거 소리, 이 모든 소리를 합한 ‘도회의 소리’와 넓은 플랫폼에 울리는 나막신 소리가 합하여 지금까지 고요한 자연 속에 있던 사람의 귀에는 퍽 소요하게 들린다.
‘도회의 소리!’ 그러나 이것이 ‘문명의 소리’다. 그 소리가 요란할수록 그 나라가 잘된다. 수레바퀴 소리, 증기와 전기 기관 소리, 쇠망치 소리 (중략) 실로 현대의 문명은 소리의 문명이다.”
이광수가 ‘문명의 소리’라고 찬탄했던 그 모든 소리들이 이제 사생활에 피해를 주는 소음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광수는 우리가 소음으로 여기는 ‘소리들’을 우리의 몸과 몸이 움직여 만들어내는 삶의 역동적 소리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소통하는 소리의 공동체
층간 소음부터 생활환경 소음에 이르기까지 ‘소음’과의 전쟁이 한창인 시절이다. 하지만 한때 소음으로 여겼던 많은 것들 속에는 잊혀진 우리의 추억과 삶이 존재한다. 골목길을 돌며 ‘찹~싸알~떡’을 외치는 떡장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춥고 깊은 겨울밤의 정적을 깼다. 그의 힘겨운 삶과 우리의 삶을 마주보게 하며 삶의 온기를 지피기도 했다. 건너편 집의 텔레비전 소리, 옆집 중학생의 피리 소리, 앞집 아저씨의 얼큰한 신세타령 소리 등등. 이 모든 소리가 모여 동네를 이뤘으며 그곳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냈다.
소리가 소음으로 전락하기 이전 시대에는 일종의 ‘소리의 공동체’가 존재했다. 소리의 공동체가 만들어낸 ‘소리의 풍경(Soundscape)’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나와 너와 우리가 양방향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리는 분열된 사람들의 관계를 하나의 공통감각으로 묶어주는 매체인 ‘통합적 감각’ 형성을 위한 메신저이다.
100여 년 전 전차가 서울의 대로를 가로지를 때, 근엄하게 갓을 쓴 할아버지는 전차 안에서 신문을 ‘읽었다’. 할어버지의 신문 읽기는 공공장소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민폐’가 아니었다. 글은 자고로 소리 내서 읽는 게 우리의 전통이었으며,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책 읽는 소리는 귀동냥 지식의 근원이었다.
1907년 잡지 <서우>에는 김유탁의 ‘신문 광포(廣布) 의견서’라는 글이 실렸는데, 근대 초기 글 읽기의 다정다감한 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동네마다 넓은 집에 신문종람소(新聞縱覽所)를 정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에 동네의 남녀노소가 신문종람소에 모여 각각 한자리씩 차지하고 쭉 둘러앉았다. 혹 담배를 피우고, 혹 아이를 안고, 혹 짚신을 삼고 자리를 짜기도 하며, 혹 옷을 짓고 물레질을 한다. 유식한 사람이 높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낭독한 후에 의미를 설명하면 내외국 사정과 고금의 형편을 모를 것없이 다 알게 되었다.”
신문종람소는 여러 신문을 마련해 놓고 빌려 주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곳이다. 옛날 신문 종람소는 마을 사랑방과 같았다. <독립신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한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신문을 읽어 줬다. 당시만 해도 글은 낭송과 낭독하는 것이었다. 온 몸으로 글을 읽음으로써 공명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부모나 가족이 어린자식에게 정성과 사랑을 담아 책을 읽듯이.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전기수의 후예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소리가 우리의 무기다
증기기관차는 6.25 전쟁을 겪은 우리에겐 특별하다. 그 증기기관차 위에 올라앉아 얼마나 많은 피난민들이 자유를 찾아왔던가. 그때는 칙칙폭폭 그 굉음이 어쩌면 다정하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증기기관차의 우레와 같은 굉음이 근대 세계와 문명 세계의 출현을 알리는 소리였다면, 광장의 함성과 연설은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되묻는 소리였다. 연설이라는 서구적 말하기 방식과 낭송과 낭독이라는 전통적인 글 읽기 방식이 결합하여 새로운 ‘소리의 물결’을 완성했다. 일명 대중 집회였다. 근대 초기 지식인들은 대한제국의 문명화를 위해 연설과 웅변이라는 제도를 시민 사회에 도입했다. 독립협회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에서 연설회를 개최했다. 문명개화와 근대화에 대한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방청객 수는 1,000명에서 2,000명가량을 넘나들었다. 물론 유료였으나 연설회 입장권은 연일 매진이었다. 신분의 높고 낮음, 지식의 있고 없음을 떠나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표현의 시대가 도래했다.
연설의 문화, 연설이라는 소리의 문화는 식민지 시대의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일제의 식민지라고는 하지만 1920년대 한국의 도시 풍경은 요즘과 비슷한 대도시의 풍경이었다. 서울은 현란한 네온사인과 음악 소리, 자동차 소리, 인력거 소리,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구두소리로 뒤덮였다.
대낮에는 자동차와 전차, 버스, 오토바이, 인력거가 서로 경쟁하듯 아우성쳤고, 밤이 되면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도심의 밤거리를 점령했다. ‘쌍 에스 생S生’이라는 필명의 기자는 1929년대 1월자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서울의 풍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뿌웅 뿌웅 까르르르 뿌웅
먼지를 연기같이 일으키면서
진흙 묻은 자동차 (중략)
뽕 뽕 기생 탄 인력거
텁석부리 ‘인력거’ (중략)
깨육 깨육 깨육 딱 딱
‘모던보이 지팡이 소리’
날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이 요란한 속에서 눈을 핑핑 돌린다.”
서울은 대도시로 변했다. 이광수가 생각하는 ‘문명의 진보’를 상징하는 소리도 일종의 신경쇠약을 일으키는 소음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음의 증가는 곧 유동하는 사람들, 유동하는 삶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침이 무렵 ‘경성방송국(JODK)’이 설립되어 라디오 송출을 시작했다. 극장에서는 무성영화 <아리랑>이변사의 목소리로 재현되면서 ‘민족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겼으며, 라디오는 라디오 연극과 유성기 음반을 통해 한민족의 슬픔과 탄식과 기쁨과 쾌락을 실어 날랐다. 또한 ‘승일’이라는 필명의 기자가 말한 것처럼 라디오는 “세계의 움직임!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각 가정의 응접실로 전파하면서 소리의 공동체를 형성해 갔다.
홍순태 작가의 작품. <마포구 1968>. “뻥이요!”는 유년 시절의 추억의 소리가 되었다.
시각에서 청각으로, 청각에서 촉각으로 다시
증기기관차, 전차, 자동차, 증기선, 군함, 빌딩 등 한국의 근대는 서구로부터 유입된 시각적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점차 서구적인 시각 이미지를 청각(소리) 이미지로 전유해 갔다. 사람들은 왁자지껄한 대도시의 소음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식민지의 현실을 탄식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는 편리한 삶에 익숙해져 간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각도 청각도 아닌 촉각이 심지어는 후각까지 대세다. 마우스, 컴퓨터 자판, 터치 패드의 터치음이 지금 여기를 지배하는 소리지만, 이러한 디지털 기계들은 청각보다는 촉각이 더 우선적이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자신만의 내밀한 방을 만들어 분자화되고 파편화된 소리를 즐길 뿐이다. 거기다 아로마 웰빙의 후각까지 동원되었다. 그 속에는 타자와 함께 만든 우리의 소리가 자리 잡을 틈이 별로 없다. 차갑고 이성적인 디지털 기계를 부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한 디지털 기계에 감성과 온기로 충만한 아날로그적 소리를 덧입히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글 이승원
이승원은 인천대학교 국문학교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소리가 만들어낸 근대의 풍경』 『철학극장, 욕망하는 영화기계』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 등이 있고, 논문 「근대계몽기 서사물에 나타난 신체 인식과 그 형상화에 관한연구」 「20세기 초 위생담론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