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ISM OF SOUND
그림 속 선율을 들어봅니다
그림 속 선율을 듣다
글. 황규성(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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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
에드가 드가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1834>
그림 속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미술에서 주목되지 않았던 소재였다. 에드가 드가는 오케스트라의 전통적인 배치에서 탈피하여 새롭게 구성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이나 무대 위 발레리나들의 공간 또한 불완전하게 부분적으로 표현했다.
드가는 개인적으로 몇몇 연주자들과 교류가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그림 속에 담겨 있다. 특히 바순 연주자인 데지레 디오는 실제 오케스트라에서는 중심에 위치해 있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공간은 3개의 층위로 나누어져 있다. 전경은 작품 속의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할당된 공간인 동시에, 작품 밖에서 그림을 보는 관람자들의 공간이 된다. 중앙은 오케스트라의 공간으로 연주자들이 앉아있다. 후경은 발레리나들이 춤을 추고 있는 공연 무대이다. 비스듬하게 화면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수평선이 바로 무대와 오케스트라석, 관객석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서로 다른 공간처리에 의하여 돌아앉은 오케스트라석과 무대 사이의 대조가 더욱 강조된다. 특히 전경에서 보이는 더블베이스 연주자의 머리와 악기는 의도적으로 더 돌출되어 있어서 무대와 오케스트라석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 노래 도미에 <노래 하는 피에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삐에로의 상반신 옆모습이 전면에 그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노란색 배경에 흰색의 거칠고 굵
은 선으로 피에로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피에로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인 채 구슬픈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레이스가 달린 풍성한 흰옷을 입은 삐에로의 오른쪽 옆모습 뿐 아나라, 검은 선으로 표현된 기타도, 거무스름한 노란색 배경도 큰 붓으로 빠르게 그린 듯 거친 붓 선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가장 현대적인 주제는 파리의 일상 그 자체였다.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모습이나 일상적인 거리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졌다. 도미에는 그 중에서도 일반 서민만을 고집해 그렸다. 다른 근대 미술가들이 부르주아의 여흥이나 세련된 도시 이미지들을 많이 그렸다면 도미에는 반대로 서민들의 소박한 모습을 단순하게 그린 것이다. 그림 속 거친 선들과 피에로의 표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피에로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느낌을 준다. 언제나 웃어야하고 남을 웃겨야하는 피에로이지만 언제나 행복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정형화를 요구하는 통념에 반항하는듯 예술의 거칠은 자연성을 강조하는듯 하다. 그래서 더욱 목청껏 노래하는 피에로의 모습에서 삶의 애환이 느껴진다.
피에르 오귀스 트 르누 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1892>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19세기 당시의 프랑스 가정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르누아르의 대표작 중 하나로 다채롭고 부드러운 색의 향연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가 자신의 친구인 앙리 르롤의 집에 놀러 갔었을 때 크리스틴과 이본느 자매가 르누아르를 위해 바그너 곡을 연주했고, 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화면 중앙, 푸른색의 허리 리본 매듭이 있는 하얀색의 드레스를 입은 이본느는 피아노를 연주하려 악보를 보고 있다.
그녀의 하얗고 고운 왼손은 악보집을 잡은 채 오른손은 피아노의 건반 위에 놓고 연주하고 있다. 이본느의 바로 옆에는 악보를 넘기는 것을 도와주려는 듯 서 있는 또 다른 소녀가 있다.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갈색머리의 이 소녀는 그녀의 언니 크리스틴으로 이본느와 함께 악보를 바라보고 있다. 크리스틴은 이본느가 앉아있는 의자 등받이를 오른손으로 잡은 채 피아노 상판 위에 왼팔 팔꿈치를 짚고 몸을 살짝 숙여 악보를 보고 있다. 두 자매의 발그레한 홍조가 소녀다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드럽고 달콤한 피아노 선율이 들리는 것 같다.
마르크 샤갈 <초록빛 바이올리니스트>
마르크 샤갈 <초록빛 바이올리니스트, 1924>
세로형의 이 작품은 샤갈의 작품 중에서 크기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매우 큰 대작이다. 작품의 크기 때문에 그림 앞에 서면실제 중년의 남자가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느낌이다. 샤갈의 작품에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종종 등장하는데, 구슬프고 강렬한 음색의 바이올린은 유대 민족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고달픈 모습의 떠돌이 연주자는 러시아 유대인의 결혼식과 축제, 마을행사에 자주 등장한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발아래 집들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주황색 바이올린을 어깨에 걸친 채 고개를 기울여 흥겹게 연주를 하고 있다. 춤과 음악을 통해 종교적 융화를, 경쾌한 음악의 선율을 느낄 수 있다. 인물의 발아래에는 집과 마을, 나무들이 표현되어 있고, 머리 위에도 집과 마을, 그리고 뭉게구름이 표현된 특이한 구도인데, 러시아에 있는 샤갈의 고향 비테프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연주자의 두 손과 신발이 각각 다른 색상과 패턴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자유로운 선율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삼각형과 사각형을 조합하여 표현된 작은 집과 집 사이에는 유태인 교회당인 시나고그가 배치되어 있어 종교적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글 황규성
황규성은 미술사가다. <주간동아>에 ‘그림 읽어주는 남자’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