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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UMMER

JOY OF LIFE
가족이 나누는 인생의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이
아버지와 아들을 더욱 행복하게
그리고 가깝게 만든다

바순 유전

글. 곽문주 사진. 안홍범

두 사람은 사는 모양이 참 닮았다. 장명규, 장현성 씨 부자는 대를 이어 바순을 연주한다.
바순이 일상의 중심인 것도, 집보다는 연습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것도, 정한 길 외에 곁눈질하지 않는 것도….
연주자의 길이 외롭지 않은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길을 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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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수니스트 장현성은 공항에서 곧바로 서울 서초동에 있는 연습실로 내달려왔다. 촉박한 인터뷰 일정 때문에 무리하게 시간을 낸 것은 아닌지 미안해하자, 손사래를 치며 “늘 그런 걸요”라고 말한다.
2년 전, 국내에서 최초로 베를린 필 하모닉 아카데미에 합격해 연주 활동을 해 온 장현성, 그의 아버지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장명규 바순 부수석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 연습실에서 10년 넘게 함께 시간을 보냈다.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 아들은 공항에서 곧바로 연습실로 와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저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아들은 바순을 연습하다 늦은 밤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틈만 나면 바순을 연주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 오래 전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지독한 성실함이 두 사람을 각각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이리라.

장명규 씨는 연주회가 끝나면 곧장 연습실로, 장현성 씨도 한국으로 들어오면 연습실로 직행한다. 연습실은 두 사람의 일상과 인생이함께하는 공간이다.

색소폰을 불고 싶었던 열여덟의 아버지
클래식 FM '당신의 밤과 음악‘ 시그널은 더글라스(Douglas)의 '찬가(Hymn)'란 곡인데, 이 곡이 바순 곡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바순하면 표현할 수 있는 음역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순도 다양한 음역을 표현할 수 있어요.”
장명규 부수석은 홀쭉한 키만큼이나 길쭉한 바순을 꺼내더니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저음과 고음의 음색도 매우 다른데, 할아버지 목소리 같은가 하면 장난꾸러기 목소리 같기도 하고, 제법 뱃고동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바순은 오케스트라의 신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오보에와 플루트 등과 잘 섞이게 만드는 접착제 같은 역할도 하고, 때로는 목관악기 전체를 더 따뜻하게 하기도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장명규 부수석의 웃음이 참 온화하다.
30년 이상 바순 연주자로 살아오면서 그도 바순의 음색을 닮아버린 걸까?
“저는 바순을 늦게 만났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하게 됐죠.”
그는 본래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색소폰을 불었단다. 힘껏 숨을 불어 넣으면, 뱃심 있는 소리로 화답하는 듯한 소리가 좋았다고. 그 소리에 둘러싸여 있는 순간만큼 세상이 온통 내 것인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데다 부모님의 반대로 망설이던 차였는데, 음악 선생님의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바순을 적극적으로 권유한 것이다.
그렇게 1년 반동안 연습해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했고, 동아음악콩쿠르 바순 1위를 수상했으며, 스위스 쥬리히 빈터투어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가 서른한 살이었죠. 딱 20년 전인데요. 그때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원서를 넣었는데 떨어졌어요. 막다른 길이라고느낀 순간이었죠.”
그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아니면 월급을 받는 연주자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10년 동안 다양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거나 대학에서 강사를 역임하며 지냈다.
“마흔 한 살이 되었을 때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정명훈씨가 예술감독으로 왔어요. 함께 음악을 해보고 싶은 지휘자가 온 거죠.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귀로만 뽑겠다’가 그가 내건 슬로건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합격을 했고, 벌써 10년째가 되어 가네요.”

서울시립교향악단 바순 부수석 장명규 씨

아버지의 바순 소리를 듣고 자란 아들
바수니스트 장현성은 어려서부터 용돈을 받으면 베를린 필 실황 DVD를 사서 보거나 바순 곡을 기계가 고장 날 때까지 듣곤 했다. 아버지도, 외삼촌도 바수니트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하셨고, 여동생도 바순을 공부하고 있으니, 클래식 음악이 일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란 셈이다.
“남다르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바순 곡 듣는 게 좋아서 하루 종일 지겨울 만큼 음악을 듣고 연습했어요. 콩쿠르에서 1등 하려고 하거나 상 타려고 무조건 열심히 해본 적은 없고요.”
그는 예원학교에 입학했을 때 치열한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네다섯 살 때부터 경쟁을 뚫고 여기까지 온 친구들이다 보니, 즐기면서 음악을 해온 그와는 음악을 대한 태도와 너무 달랐던거다. 게다가 음악 콩쿠르에서도 실망스러운 성적을 받아 의기소침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저는 현성이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바수니스트의 길을 가게 하는 게 맞을까?’ 고민했어요. 평생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직업인데, 그 결과가 예상한 것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상처를 받으면 평생 이 길을 가기 힘들 테니까요.”
그런데 바수니스트 장현성은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로 입학했다. 상처가 독이 아니라 약이 된 셈이었다. 음악은 무엇보다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다, 아버지의 연습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을 텐데도 그 소리를 좋아하는 아들. 아버지는 연주자의 길을 행복으로 여기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국내 최초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서 연주하고 있는 바수니스트 장현성 씨

각자 자기만의 무대를 가진 아버지와 아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베를린 필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유학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한국에서 베를린 필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을까?
“2010년 대학교 4학년 때 독일에서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클라우스 투네만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온거예요. 자기 밑에서 배워 보지 않겠느냐고요.”
클라우스 투네만이라고 하면 세계 바수니스트 가운데 단연 최고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바수니스트들이 클라우스 투네만을 거쳐 갔다.
“연습할 때 온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굉장히 엄격하십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유쾌하고 호탕하셔서 지인들에게 한국에 내가 아끼는 제자가 있다고 자랑도 하시죠. 그럴 때면 여전히 믿기지 않으면서도 감사해요.”
누구에게나 똑같은 곡의 악보가 주어질 텐데, 연주자의 어떤 자질에 따라 같은 곡도 다르게 들리게 연주할 수 있는 걸까? 장명규 부수석은 정명훈 예술감독과 음악을 하면서 그에게 끊임없이 배우게 된다고 한다.
“정명훈 씨는 연주 소리가 성악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길 원합니다.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오케스트라 소리는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내가 잘 낼 수 있는 연주 소리와 그 소리를 원하는 지휘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해요. 똑같은 연주자라도 어느 오케스트라에서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또 어느오케스트라에서는 맞지 않는 소리를 내는 연주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연주자들이 모였다는 베를린 필은 어떤 연주 철학을 갖고 있을까? 바수니스트 장현성 씨는 ‘내가 보고 있는 악보의 주인은 나다!’란 생각이 베를린 필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오케스트라에서 그렇게 자기 개성을 앞세우면 조화로운 소리가 가능할까?
“그게 참 묘하죠. 그 순간 그 음을 크게 내든 작게 내든 음악에 대한 자기 해석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해석이 다른 연주자의 소리와 조화롭기까지 해야 합니다. 베를린 필의 철학은 ‘지휘자가 없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입니다.”
이처럼 단원 한 명 한 명이 동등한 자기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데는 베를린 필의 역사에 그 기원이 있다. 베를린 필의 모체는 벤야민 빌제가 창단한 오케스트라인데, 폴란드 바르샤바 공연을 떠나면서 기차 4등석에서 짐짝 취급을 받은 54명의 단원이 사표를 던지고 1882년에 만들었다. 이때부터 단원이 투표로 지휘자를 선임하는 전통이 생겼단다.
“베를린 필 단원들에게 오케스트라는 밥벌이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 삶 자체입니다. 저는 꿈조차 꾸지 못한 베를린 필에서 아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행복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독립적인 연주자로 각자만의 무대에 오른다.

소리꾼의 운명
이야기가 길어져서 밥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 두 부자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뭘 먹고 싶으냐는 질문에 장현성 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순대국이요!”한다. 연습실 앞에 있는 6년 이상 되었다는 단골집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가 두 부자를 알아보고 곱빼기로 주신다. 두 사람은 식성마저 닮았다.
“바순 연주 외에 다른 삶이 없어서 이야기가 재미없으시죠. 음악 하는 사람들 대부분 이렇게 살아요. 정명훈 씨가 연주회 다닐 때마다 계약 조건이 있어요. 피아노 한 대를 꼭 준비해달라는 겁니다. 무대 위에서는 지휘를 하고 무대 아래에서는 오로지 피아노만 연주하시죠. 이게 외골수 기질 때문인가 봐요. 어쩜 하나를 집요하게 즐길 수 없으면, 고독한 이 길을 묵묵히 가기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습을 끝낸 아버지와 아들은 이렇게 마주하며 순대국을 종종 먹었을 테다. 말없이 음식을 먹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부자. 이미 음악으로 이어져 있으니 말을 보태지 않아도 속마음을 훤히 안다.
“나를 대신해 연주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해요. 그리고 건강 관리를 비롯해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하죠. 제가 아들에게 보여준 건 바순만 아는 일상의 모습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닮은 건 아버지와 아들이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바수니스트로서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는 서로의 모습에 존경을 보내는 마음이 깊이 흐르기 때문이리라.

글 곽문주

곽문주는 세상을 관찰하고, 느끼고, 표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물과 사물 사이, 그 사이의 공간을 좋아한다. 그 공간에서 서로 ‘다르다’를 느끼고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