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015 AUTUMN

ABOUT COVER
표지 작품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예술 세계와 만납니다

빛, 자연의 여백

글.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Condition Light, 120×250cm, Oil on canvas, 2011

화면을 터치하면 닫힙니다

도성욱은 빛을 그린다. 빛을 그린다기보다는 빛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의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빛이 다. 반사, 굴절, 혹은 투영으로서의 광휘가 가득하다. 나무와 바다, 들판과 함께 빛과 대기의 기운을 흠뻑 머금고 있다. 현실이건 예술이건 인간이 대상,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시간과 빛의 조건과 간섭이다. 그의 풍경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는 빛과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부터 비롯한다. 시간과 빛의 공통점이자, 존재하는 유일한 방식은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도성욱의 풍경에는 빛과 시간은 물론 바람이나 공기, 냄새, 소리, 온도, 습도 등과 같은 비물질적 조건들이 회화적으로 용해되어 있다. 이들은 화면 구석구석을 공명하며 울림과 떨림으로 메아리친다. 보는 이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도성욱의 화면은 물감으로 가득한 물질화된 공간이 아니다. 그의 풍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빛, 공기, 소리, 온도, 습도, 호흡 등과 같은 비물질적 조건들이다. 도성욱의 풍경은 비물질적인 조건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일종의 판타지다. 주지하다시피, 비물질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주변의 물질을 통한 심리적 발현일 것이다. 그의 회화는 그러한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연관성과 연계가능성 등 제반 조건들을 조율하고 안배한 행위의 결과다. 도성욱의 회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빛과 대상으로서의 나무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다투지 않고 다만 풍경화(風景化)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제주에서 보낸 시간은 자신과 자신의 회화, 나아가 자연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 가능성을 곰곰이 되돌아보는 모처럼의 기회로 작용했다. 장기적인 피로감이 누적된 자신과 작업 모두를 총체적으로,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기회였다. 그곳에서의 세상 경험은 스스로를 재충전하고 예술가적, 사회적 존재감을 재인식하기에 충분했다. 세상의 무한함과 유한성, 시간과 공간, 물질과 비물질 등의 제한과 구분을 넘어선, 하나된 자연풍경에 집중하는 전환의 기회로 작용했다. 도성욱은 자연이 무언가를 답해주기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접었다. 멀리서 구하려는 자신의 태도를 버리고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열고 들어가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다시 말해, 초심으로 돌아갔다. 몸을 들어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도성욱의 풍경은 자연의 조건에 탐닉하기보다는 자연의 내용에 자신을 삼투하고 흡수하여 살아 움직이는, 자라나는 풍경이다. 한번쯤 보고 싶은 풍경이기도 하고 평생을 보기 힘든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문득 만날 것 같은 현존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반면에 실재하지 않는 창조된 장면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새삼 회화의 힘, 재현의 힘, 화가의 힘을 돌아보게 한다. 그저 무심한 척 잔잔하게 진동하고 있는 도성욱의 풍경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다.

© Condition Light, 240×200cm, Oil on canva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