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ON SHARING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감각정서를 공유할 때 창조가 가능해진다
글. 김정운(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저마다 가치관, 신념, 꿈이 다르듯 인생의 방향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방향이 제각각 달라도 만나는 지점이 있다.
교차로 혹은 엇갈림 길.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 타인이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이 달라도 교차로에서 마주칠 때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다양한 방향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위해 필요한 소통의 자질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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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이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달려드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며 자신의 생각이 더 탁월함을 치밀한 논리로 압도하려는 경우다.
TV토론에서 자주 보는 광경이다. SNS의 반응은 열광적일지 모르나, 앞에 앉은 사람이 그의 논리에 설득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인간은 절대 논리로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말하는 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응은 항상 이렇다. ‘그래. 당신 말이 다 옳아.
'그래서?’ 이해는 했지만 설득당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논리는 공감을 전제로 한다. 논리적 설득은 정서적 공감이 이뤄진 상태 이후에만 가능하다. 이때 정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기쁨과 슬픔과 같은 정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정서는 ‘개념적 정서’라고 한다. 이미 인지적 처리와 평가가 끝난 상태의 정서를 뜻한다. 인지적 과정이 개입되지 않는 또 다른 차원의 정서가 있다. 이를 ‘감각정서’라고 한다. 정서적 공감이 전제로 하는 정서란 바로 이 ‘감각정서’를 의미한다.
정서 표현이 자유로울때 공감이 일어난다
말 그대로 감각적으로 느끼는 정서다. 감각정서는 몸짓, 표정, 말투와 같은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전달된다. 같은 손동작이라 할지라도 그 속도에 따라 상대방이 느끼는 정서는 전혀 다르다. 말하는 이가 빠르게 손을 움직이면 상대방은 불안해진다. 반면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방의 말에 거의 집중하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비언어적 수단이 어떤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잘했어!’라고 했을 때 이 말은 정말 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행동을 비꼬는 뜻일 수도 있다. 같은 단어지만, 그 맥락이나 어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같은 의미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단어의 의미를 인지적으로 구별하는 것보다 손짓, 발짓, 표정과 같은 아주 사소한 정서적 단서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전달되는 ‘감각정서’는 아주 찰나적이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을 많이 겪어본 이들은 감각정서에 기반한 자신의 판단을 ‘감(感)’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부부가 오래 함께 살면 닮아가는 것도 이 ‘감각정서’ 때문이다. 얼굴이 닮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서를 표현하는 비언어적 수단이 유사해지는 것이다. 같은 조직에 오랫동안 몸 담은 사람들도 뭔가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이 ‘감각정서’의 표현방식이다. 조직문화의 실체는 이 ‘감각정서’에 있다.
조직의 소통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보의 공유는 사실 아주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공유하는 감각정서의 유무가 조직의 소통능력을 결정한다. 기쁨을 표현하는 비언어적 수단들이 얼마나 풍요로운가에 따라 조직의 소통능력은 판가름 난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가 어떠한 감각정서로 표현되는가에 따라 그 조직의 내일이 결정된다.
무엇보다도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정서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옆에서 일하는 이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서표현이 둔감한 조직, 표정이 굳어 있는 사람들의 조직은 하루 종일 아무런 말도 없는 조직보다 더 위험하다. 미래사회는 즐거운 조직만 살아남는다. 즐거운 조직에서 정서공유가 가능하며, 정서공유가 가능해야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소통이 되어야만 창조가 가능해진다. 소통과 창조는 동의어다!
글 김정운
김정운은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하며 저술과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