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ISM OF DIRECTION
다함께 나누는 공간이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공원 이야기입니다
개개인이 행복한 공공영역, 도시공원
글. 진욱(진욱건축공간디자인 대표소장)
공원은 시민사회가 태동할 무렵 만들어진 공적인 공간이다. 굳이 먼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퇴근 후 혹은 휴일 도심의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이제 공원은 각기 특성을 가지고, 각자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게 나아가고 있다.
인디언 원주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스탠리 파크(Stanley Park)
밴쿠버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주는 데는 도시의 오아시스라 할 수 있는 스탠리 파크가 한몫을 한다.
1888년 9월 캐나다 연방총독 스탠리(Stanley) 경의 이름을 딴 이 공원은 3면이 바다이고, 서쪽은 밴쿠버 도심과 연결되어 있는 반도 형태의 공원이다. 과거 이곳은 몇몇 원주민 부족들이 일대 울창했던 삼나무를 잘라 카누를 만들며 생활해왔다.
1791년 스페인 호세 마리아 나르바에즈 선장과 영국 조지 밴쿠버 선장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면서 서방세계에 이곳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밴쿠버 선장은 자신의 저서 『발견을 위한 항해(A Voyage for discovery)』에서 ‘밀물이 밀려들 때는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이는 작은 섬’이라고 이 지역을 묘사했다. 수백 년 된 원시 전나무 숲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오래된 나무는 그 높이가 76m에 이르기도 한다. 공원의 브록턴포인트(Brockton Point)에는 인디언들의 문장, 8개의 토템폴이 서 있는데, 붉은 전나무에 고유한 역사적 사실과 신화가 새겨진 작품이다. 최근 스탠리 파크는 내부에 88km에 이르는 해안 산책로, 22km에 이르는 도로, 미니 철로, 테니스 코트, 골프 코스, 해안 수영장, 밴쿠버 수족관 등을 갖추어 시민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정원을 공유하는 멜버른의 피츠로이 가든(Fitzroy Garden)
정원의 도시 멜버른 곳곳에는 아름다운 정원들이 있지만, 피츠로이 가든은 그중 느릅나무와 떡갈나무 그리고 무화과와 가로수길로 잘 알려져 있다. 시내와 뚜렷한 경계를 두지 않고 동화되듯 자연스럽게 펼쳐진 이 공원 입구를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자전거를 빌려 공원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원 내부에는 호주 대륙을 처음 발견한 영국 탐험단의 리더 캡틴 쿡의 생가가 있으며, 공원의 설계자 제임스 싱클레어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전체 모습이 유니언 잭과 비슷한 문양을 하고 있다. 분수, 조각, 나무, 꽃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고, 계절에 따라 다른 꽃을 볼 수 있는 온실이 있는 꽃의 천국이기도 하다. 꽃을 사랑하는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또한 공원 내 영국 튜더 왕조 때 고딕건축 양식으로 지은 건물을 미니어처로 만든 ‘미니 튜더 빌리지’는 산책의 재미를 더하는데, 이 오두막에서는 테마별로 즐거운 체험도 가능하다. 도심에서 5분 이내에 있는 공원이니 만큼 이곳 시민들은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치듯 들러, 드넓은 잔디밭에서 한때의 여유를 누린다.
40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하이드 파크는 8개의 왕립공원 가운데 위치, 규모, 인지도 면에서 맏형 격이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하이드 파크를 거쳐 가는 지하철역만 해도 세 정거장이다. 본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소유지였던 공원은 헨리 8세가 본인의 사냥터로 사용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는데, 찰스 1세가 1637년 런던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환원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녹지대가 워낙 잘 보존되어 있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는 기분마저 드는 곳이다. 공원을 걷다 보면 다양한 조각상을 볼 수 있으며, 런던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해 주변 박물관과도 연결되어 있어 박물관 관람도 즐길 수 있다.
주말마다 누구나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스피커스 코너’가 마련되어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공원 내 조성된 인공호수 서펜타인 레이크(Surpentine Lake) 주위를 걷다 보면 조정 경기, 레이싱 보트 같은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을 쉽게 볼수 있다. 공원 내에는 이 호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서펜타인 갤러리가 있는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전시하여 주목받고 있다. 매년 여름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지은 파빌리온도 눈여겨볼 만하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고전적 감성지대, 팰리스 오브 파인 아츠(Palace of fine arts)
높은 언덕이 많고 도시 외곽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도시 샌프란시스코에는 이곳 시민들이 아끼는 특별한 공원이 있다. 100년 전부터 있어 온 이 공원 내부에는 유럽의 중세도시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다. 바로 팰리스 오브 파인 아츠이다. 1915년 파나마 운하의 개막을 축하하는 파나마-퍼시픽 박람회 때 미국 전역과 25개국의 모금을 통해 이루어진 네오 클래식 양식의 대형 건축물로 이탈리아 건축가 피라네제의 스케치와 스위스 아티스트 아놀드 뵈클린의 ‘이즐 데 모르’에서 영감을 얻어 비너드 R 메이벡(Bernard R. Mayback)이 설계했다. 메이벡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양식에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 정신을 가미한 보자르 건축양식을 채택했다. 당시 미학적으로 아름답기는 했지만 나무와 벽토 재료로 축조해 또한 지진현상으로 뒤틀림 현상이 일어났고, 1959년 한 시민이 수리 공사를 위해 기금운동을 벌여 1962년부터 13년 동안 콘크리트를 사용해 복원했다. 지금은 공원 곳곳에 시민들이 기증한 의자가 기증한 이름과 함께 남아있어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여유를 준다. 영화 <더 락(The Rock)>에서 숀 코네리가 딸을 만나는 장면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글 진욱
진욱은 진욱건축공간디자인 대표소장이다. 홍익대학교 건축도시 대학원에 외래교수로 강의 중이며, 서울시, 파주시, 구리시, 서울메트로 등 심사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