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CREATIVE
우리 시대의 진정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나 봅니다
사용자와 함께 뛰노는 뮤직 플랫폼을 꿈꾼다
김현걸 소리바다 부사장
글. 곽문주 사진. 안홍범
2000년 초반부터 등장한 소리바다 최초 서비스는 음악의 생산과 유통,
배포와 공유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이제 음악은 CD나 LP 등의 물리적 공간보다
하드 디스크 안에 있는 게 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디지털 음악의 포문을 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소리바다의 김현걸 부사장을 만나, 디지털 음악의 지난 15년 역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파고들면,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서 터진다
1983년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앨범<Thriller>. 김현걸 부사장에게는 첫사랑을 떠올리는 것보다 더 두근거리게 만드는 생애 첫 앨범이다. 음반 가게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취해 정신이 아득해진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머님이 음악을 무척 좋아하셔서, 거실 한 벽면이 LP로 가득했고, 집 안에는 늘 음악이 흘렀죠.” 밥을 먹듯 음악을 듣고 자란 그였지만, 그 자신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음악 시장으로 전환하는 새 역사를 쓰게 될 장본인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 포털 사이트 음악 콘텐츠 담당자로 일했던 그는 2000년에 몇몇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미국의 다운로드 서비스 넵스터와 경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시작은 그저 프로그램 개발이 재미있어서였고, 혹시라도 잘 만들어지면 프로그램을 팔아서, 멋진 차를 뽑아 여행이나 다니자고 친구들과 좀 놀아 볼 다짐을 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거다. 한통의 전화가 왔다. 서버를 관리해주는 회사 담당자였다. “서버가 터지겠어요. 석 달 동안 1백만 건이 다운로드 되었어요. 증설해주세요!” 이게 무슨 난리법석이란 말인가. 사용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에 열광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지금의 소리바다의 전신인 소리나라의 사업자등록 절차를 밟았다. 이후 더욱 놀랄 일이 연속으로 발생하니, 오픈 10개월 만에 가입 회원 수가 1,000만 명, 2년이 지난 2002년도에는 2,200만 명을 육박했다.
음악시장에 대한 책임감으로
저작권법 법적 공방
2,200만 명이란 숫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리나라 음반 시장의 규모를 절반으로 줄어들게 했으니 말이다.
“어느 날, 음악시장을 망가트린 주범이 되어 있더라고요.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권리자에 해당하는 가수들을 직접 만나러 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합리적인 의견을 구하고, 저작권법, 음원 다운로드 유료화 문제로 2년 이상 법원을 들락날락하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법원에서도 무척 난감해 했으니, 그 판례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담당했던 이용우 전 대법관이 인상에 남는 판례의 하나로 디지털 음원 저작권을 꼽았을 정도다. 이렇게 해서 2004년, 저작권을 갖고 있거나 대행하고 있는 음반 시장에서 선승인을 받은 음원만 유료화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OSP(Online Service Provider)특별법이 생겼다. 이때부터 소리바다는 한 곡당 500원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그는 디지털 음악시장의 기틀을 마련한 시간을 두 남녀가 가볍게 계약결혼을 했다가, 진정한 사랑에 빠져 드는 과정에 비유했다. “가수 김현철 씨는 청소년 시절, 제 우상이었어요. 그의 음악은 이전의 가요와 완전히 달랐어요. 새롭고 독특했죠.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제 앞에 앉아 있고, 제가 그를 ‘형!’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죠.” 아티스트와의 직접적인 대면은 행복함과 동시에 디지털 음악시장의 선순환 구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2006년 2월에는 MP3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음원제작 협회와도 법적 공방의 종지부를 찍는다.
최근 디지털 환경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지니, 모든 서비스를 한 곳으로 모으는 컨버전스(Convergence)가 트렌드가 되었다. 그러자 이동통신회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스마트폰과 음원 서비스를 패키지로 묶는 상품을 출시했다. 소리바다도 스마트폰 환경에 대비해왔지만, IOS 애플폰에만 집중했던 거다. 스마트폰 환경의 변화로 소리바다의 유료 회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소리바다는 파도타기 기능 등 사용자 중심의 음악전문 서비스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그런데 콘텐츠의 힘만으로는 승부가 어려운 시장이 형성된 거죠.”
소리바다는 지난 2014년 9월부터 삼성전자에서 런칭한 음악 전문 온라인 서비스 삼성뮤직과 밀크뮤직에 음원 공급 서비스 제휴를 맺고, 350만 곡의 디지털 음원을 서비스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음악 프로그램 <히든싱어>의 음원 서비스를 통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나의 옳음에 빠지지 마라
4년 혹은 2년 단위로 강산이 변하는 시대다 보니, 디지털 시장에서 초반에 강세를 달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업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디지털 음악시장에서 15년 역사를 만들어 온 저력이 궁금했다.
“저에게 원칙이 있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입니다. 내 옳음에 빠져 있으면, 전체를 바라볼 수가 없어요.” 그에게는 목표나 수치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기획안의 완성도보다 사람을 믿어요. 그렇지 않으면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죠.” 이런 연유 때문일까. 양정환 사장을 비롯해 소리바다에서는 초창기 창립 멤버들이 여전히 긴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최근 김현걸 부사장은 10~20대가 어떻게 노는지에 주목한다. 이전 세대들은 떠먹여 주는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지만, 앞으로의 세대들은 점점 더 콘텐츠를 창작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뮤직 플랫폼 또한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놀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
대중음악은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음악이다. 1980년대, 1990년대, 시대별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묶어주는 공통분모의 음악이 있었다.
디지털 음원을 통해 우리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자신의 관심권 밖에 있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취향이 다원화되고 세분화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대중음악을 더욱 각별하게 만드는 공유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운일이다.
디지털 개별화 영역을 인정하면서도 사용자와 창작자가 함께 놀고 만들어 나가는 뮤직 플랫폼을 꿈꾸는 것. 소리바다가 다른 음원 서비스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고민을 한다는 데 있다. “어떤 틀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사용자들이 아프리카 TV에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이런 콘텐츠를 봐라!’ ‘이렇게 놀아라!’ 몰아붙이지 않죠.”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위안 받고, 도취되고,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가 되기도 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음악을 사랑했던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있어서, 노래할 때 자신의 숨소리마저 전하고 싶어 하는 가수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