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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New Year

curator’s chocie

세상에 없던 영화, 미지의 세계를 담다

2001: a space odyssey

글. 심영섭 그림. 민지홍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화성에서의 생존을 그린 영화 〈마션〉, 행성 간 이동을 소재로 한 〈인터스텔라〉, 우주에 홀로 남겨진 비행사의 사투를 담은 〈그래비티〉는 수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모든 SF 영화의 전신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지금 봐도 최근 SF 영화에 뒤지지 않는 이 영화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리얼리티에 대한 끝없는 집착, 명화를 만들다
인간이 달 착륙에 성공하기 1년 전인 1968년 뉴욕. 할리우드를 떠나 영국에서 영화를 만들던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신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시사회가 열렸다. 그런데 광대한 우주를 바탕으로 원시 인류가 최초의 도구인 뼈다귀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목성으로의 여행까지를 그리는 이 장대한 SF 영화를 보다가 241명의 관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그중에는 “대체 이 영화가 뭘 이야기하고 있는지 내게 이야기해 줄 사람 있어요?”라고 말하며 화를 낸 당대의 스타 록 허드슨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지나치리만큼 단순한 스토리인 데다, 수십 분간 한 마디의 대사도 나오지 않거나, 배경 음악조차 없이 슬로모션으로 영상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현존하는 모든 SF 영화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엔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비전, 기계와 인간의 관계, 문명과 본능적 충동이 날 선 대립을 벌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통찰이 가득하다. 사실 이 영화 이전의 SF 영화들 속 우주 공간은 괴물, 괴수, 벌레가 판을 치고 비슷한 모양의 우주선이 떠다니는 시끄럽고 떠들썩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우주 공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 준 이가 바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었다. 우주인 ‘보우만’이 에어 로크를 통해 디스커버리호로 잠입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에어 로크의 문이 열리면 스피커에서 ‘굉음’이 터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큐브릭 감독은 반대로 이 장면에서 음향을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는 광선이 보일 리도 없고 폭발음 역시 귀에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대부분의 SF 영화가 일률적으로 비행접시 모양의 우주선을 사용한 반면 큐브릭 감독은 NASA에서 우주선을 개발한 디자이너 프레드릭을 고용해 엄격한 과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을 디자인했다. 결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담담하고 느린 템포로 우주의 장엄함을 압도적으로 시각화했다. 특히 모노리스를 발견한 원시인이 다른 원시인과 동물을 살해한 후, 최초의 도구인 뼈다귀를 허공으로 던지자 이것이 공간을 유영하는 우주선으로 변화하는 매치 컷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편집의 교본이 되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ustra)’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슬로모션으로 올라간 뼈다귀가 같은 모양의 우주선이 되는 이 장면을 통해 큐브릭 감독은 수백만 년의 시간이 경과 후 하나의 도구가 어떻게 우주선으로 발전하고 변모했는지 인류 문명의 발달을 단 두 컷으로 요약해 압축한 것이다.
게다가 우주선과 우주여행에 관한 이 영화에서 큐브릭 감독은 그 특유의 초정밀한 디테일로 미래의 생활상을 펼쳐 보인다. 예를 들면 우주선 한쪽 벽에 깨알같이 화장실 사용법 10가지 규칙을 적어 놓았는데, 이는 NASA가 제시한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스튜어디스가 우주여행을 하는 손님을 위해 안내 방송의 언어를 선택하는 장면 역시 단 몇 초만 비추고 지나가는데도 소품 하나 하나 고증을 거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50여 년 전의 영화, 오늘을 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이 영화가 더 놀라운 이유는 영화 속 몇 가지 설정이 이미 현재에 정확히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와의 화상 통화는 영화가 정확히 예언한 현재의 일부분이다. 영화에는 우주정거장이 일정한 원심력으로 돌아 인공 중력을 만들어 내고 있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 역시 실제로 미로 같은 우주정거장이 건설되었다. 또한 디스커버리호에 있는 완전 평면 스크린이나 영화 속 휴대용 디스플레이인 ‘뉴스패드’ 역시 40년 뒤의 평면 TV와 태블릿 컴퓨터를 예견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모습을 상당히 정확히 예측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큐브릭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 속 미래상과 우주의 모습은 ‘2001년에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놀랍게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 모든 것을 그래픽이 아닌 아날로그적인 특수 효과로 구현했다. 인간이 달에 가기도 전에 만든 이 영화가 여전히 현대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실제의 물리 법칙을 따르는 사실적인 SF영화이기 때문이다. 〈딥 임팩트〉나 〈아마게돈〉같이 미래를 다루는 수많은 SF 영화가 컴퓨터 그래픽의 자유로움을 빌려 공간과 액션을 과장하지만, 그 어떤 SF물도 이 영화 속의 사물이 주는 둔중하지만 진중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따라잡을 수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마 22세기에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인류의 진화 단계와 문명의 기원에 관해 외계인이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발칙한 상상. 목성에 스타게이트가 있어서 이것을 통한 시간 여행이 가능하리라는 믿음.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인간을 살해할 수 있다는 가정 등 기상천외한 범우주적 상상력은 수많은 SF 영화에 영감을 주어 〈스타워즈〉와 〈인텔리전스〉, 〈AI〉가 탄생되었다. 수많은 감독,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와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같은 SF 영화감독은 모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영감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비단 영화감독만이 아니다. 현재로선 인간을 능가하는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영화에 등장한 ‘할 9000’에서 미래형 슈퍼컴퓨터의 영감을 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고백한다.
당연히 2015년 〈사이언스〉지는 역대 모든 SF 영화 중 가장 과학적인 영화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꼽았다. 초정밀을 추구하는 장인 정신과 모든 것을 알아 가겠다는 지식열. 이를 뒷받침하는 스텝들의 열정과 경쟁심, 상상력과 창의력.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현재 진행형의 미래를 보여 주는 영감 덩어리로, 인류의 모든 노력과 자산이 축적된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쓴이 심영섭

글쓴이 심영섭은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 박사. 다양한 영화를 그녀만의 시각으로 평론한다. 심리학, 영화, 예술, 인문학을 영화에 접목한 영화 치료와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