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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story
eXperimental Jaguar
실험적 재규어 XJ
글. 김형준(모터 트렌드 한국판 편집장)
미스터 재규어의 마지막 명작
세상은 재규어 브랜드 창업자인 윌리엄 라이온스
경(Sir. William Lions)을 이렇게 불렀다.
‘미스터 재규어.’ 비단 회사를 세운 장본인이라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운
고성능 차에 대한 열망이 강한 인물이었고,
경영자임에도 차의 설계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세세하게 챙겼다. 그래서 직원들은 불편했을지
몰라도 그 덕분에 재규어는 1940~1960년대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다수의 명작을 쏟아
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등장한 XK
시리즈와 D 타입 스포츠카, E 타입 경주차와
마크 시리즈 세단 등이 대표적이다. 1968년
선보인 최초의 XJ(XJ6) 세단은 라이온스 경의
입김이 닿은 마지막 재규어 모델이었다. 그는
1972년 은퇴했지만 재규어는 오리지널 XJ의
스타일을 40여 년 동안 고수했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였다. 라이온스 경의 디자인이 더도
덜도 없이 완벽했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뛰어난
디자인을 할 수 없었거나. 그게 무엇이었든 XJ와
미스터 재규어가 재규어 브랜드의 유일무이한
제품과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세단이 아닌 세단, XJ
40여 년간 이어져 온 오리지널 XJ의 디자인은
네 개의 원형 헤드램프와 이 형태를 따라 길다란
보닛에 만들어진 네 가닥의 주름, 뒤로 갈수록
살포시 내려앉는 트렁크 형상, 그리고 완만하게
호(弧)를 그리며 그어진 차체 측면의 라인으로
대표된다. 단순히 우아하다거나 스포티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이 독창적인 디자인엔 비화가 있다. 시작은
세단이 아니라 일반 도로용 스포츠카였다는
것이다. 1950~1960년대 재규어는 자동차
경주에서의 큰 성공에 힘입어 스포츠카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해 있었다. 날렵하고
우아한 데다 성능까지 뛰어난 재규어 스포츠카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이에
재규어 사는 미국 시장 투입을 고려한 4인승
스포츠카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차체 앞뒤는
날렵하게 뻗고, 문도 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개발 중 상황이 급변했다. 그들에게 시급한 건
미국을 고려한 스포츠카보다 새로운 세단이었다.
재규어는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하는 대신 완성
직전이던 스포츠카를 활용하기로 했다. 뒷자리
승객을 위해 문 두 개를 추가했으며, 길쭉하던
보닛과 트렁크는 끝 단을 잘라 뭉툭해졌다.
전반적으로 고급 세단에 걸맞게 다듬었지만
스포츠카에서 비롯된 특징적인 요소까지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활처럼 휜 측면 라인, 부드럽게
가라앉는 트렁크 등 40여 년 동안 XJ의 대표
스타일로 꼽힌 특징이 바로 그 잔재다.
1960~1970년도 당대 최고의 세단
강렬한 데뷔였다. 유럽 언론은 1968년 선보인
XJ6의 아름다운 스타일에 찬사를 보냈다.
시속 200km를 내달린 고성능뿐 아니라 어떤
차보다 안락한 승차감, 대형 세단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날렵한 움직임에도 극찬이 이어졌다.
재규어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거의 매년
새로운 제품을 내놨다. 1969년엔 최고급
모델인 다임러 소버린(Daimler Sovereign)을
선보였고 이듬해엔 자동변속기 모델을 추가했다.
머잖아 뒷자리 공간을 확장한 롱 휠베이스
모델(차량의 앞바퀴 차축과 뒷바퀴 차축
간의 거리를 휠베이스라 한다)까지 더하며
선택의 폭을 크게 늘렸다. 1972년엔 XJ12가
등장했다. XJ12는 V12 엔진(자동차 제조업체
람보르기니가 자체적으로 생산한 엔진. 개량을
거듭해 현존하는 엔진 중 가장 정교한 엔진으로
여겨진다)을 얹은 세계 유일의 양산 4도어
세단이었다. 나아가 최고 속도 시속 225km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 자동차’라는
타이틀도 획득했다. 윌리엄 라이온스 경이 TV
광고에서 했던 말 그대로였다. 최초의 XJ6에서
다임러 그리고 XJ12에 이르기까지, 오리지널
XJ는 ‘역대 가장 뛰어난 재규어(The Finest
Jaguar Ever)’로서 당대를 풍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