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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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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컬렉션 여행이 된 일상

aA 디자인 뮤지엄 김명한 대표

글. 이진아 사진. 장호

‘aA 디자인 뮤지엄’ 김명한 대표에게 컬렉션은 곧 일상이자 여행이다. 그는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와 건축 오브제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떠날 채비를 한다.
시간의 깊이를 담은 수집품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여가식미(餘暇食美).
오래된 물건은 존재만으로도 이야기를 담은 역사가 된다. 김명한은 인간의 창조적 욕망이 만들어 낸 사물과 그 안에 담긴 미적 아름다움을 수집하는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 컬렉터다.
그런 그가 2007년 자신의 수집품을 총망라해 문을 연 aA 디자인 뮤지엄은 어느덧 국내 디자인 가구의 성지가 되었다. 김 대표가 컬렉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30여 년 전 을지로 중고 가구 시장에서 디자이너 미하일 토넷의 ‘토넷 의자 No.14’를 손에 넣게 되면서부터다.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시 판매상으로부터 헐값에 의자를 사는 데 성공했던 것.
이후 김 대표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aA 디자인 뮤지엄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는 산업디자인의 꽃을 피운 거장들의 초창기 에디션부터 현재의 디자인 트렌드와 미래의 방향성을 볼 수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특정한 성향이나 사조에 치우치지 않고 만나 볼 수 있다.
그는 디자인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에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아쉬움과 그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동병상련 그리고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여정과 기쁨을 이곳 aA 디자인 뮤지엄에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그가 우리 삶 속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은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만의 안목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정성’을 꼽는다.
“디자인에는 인간의 욕망과 시대정신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여 발품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탐이 나도 가짜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디자인에 담긴 작가 고유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윤리적 소비다”며 자신의 신념을 전했다.
최근 그는 아들 내외와 함께 제주도 한동리 해안도로 앞에 ‘jeju in aA’를 세우고, 아들네에 운영을 맡겼다고 했다. ‘천천히 가는 삶’을 지향하는 그답게 느린 여행자를 배려해 만든 게스트 하우스. 아직 어린 손녀가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별빛을 보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기에 더 애착이 가는 곳이다.
그에게 가족은 안식처이자 살아가는 이유기도 하다. 수집을 위해 떠났던 출장길에 그릇을 집어 오는 것은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따뜻한 한 끼 식사가 그리워서이고, 와인을 사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 잠시나마 떨어져 있었던 아내와 술 한 잔 기울이며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책장에 동화책이 자꾸 쌓여 가는 까닭은 눈앞에 손녀의 얼굴이 아른거려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선의를 택하고, 때로는 놓을 줄 아는 삶이야말로 진정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믿는 그의 하루는 오늘도 천천히 흐른다.
餘 오래된 물건의 가치를 살피다
‘그릇 수집’
낯선 곳에서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저의 가장 오랜 취미입니다. 마음을 끄는 물건을 수집하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추측하고 의미를 부여해 감정이입하기를 좋아하지요. 특히 그릇에 관심이 많아 이야기가 담긴 오브제를 모으곤 합니다. 나무로 된 그릇이나 핸드메이드 접시를 좋아하는데, 숙련된 장인들의 시간과 정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취미로는 ‘문(Door) 모으기’가 있습니다. 유럽은 오랜 세월 집을 보존하고 허물지 않으니 만든 지 수백 년은 족히 더 된 대문이 많아 수집하는 즐거움이 큽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문이 많은데 한옥과 함께 사라져 아쉬움이 큽니다.
食 아내와 함께하는 대화의 시간
‘와인과 사케’
아내와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술을 잘 마시진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부르고뉴 와인’과 ‘차가운 사케’를 즐겨 마십니다. 부르고뉴는 영어로는 버건디(Burgundy), 독일어로는 부르군투(Burgund)라고 부릅니다. 프랑스인이 가장 선호하는 와인 중 하나이며 흙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지요.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양념이 적은 음식과 함께 맛이 깔끔한 사케를 주로 마시는데, 보통 4잔 정도 먹으면 한 시간쯤 손님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웃음) 사케가 와인이나 맥주에 비해 도수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반주로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에요. 소박한 반찬을 곁들인 오니기리 그리고 오차즈케와 잘 어울리죠. 그리고 원체 적당히 쓸쓸하게 있는 걸 좋아해 혼자 사케를 즐길 때도 많습니다.
暇 공간적 사유와 사유적 공간
‘aA 디자인 뮤지엄 집무실’
뮤지엄 안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무실입니다. 다른 직원들도 제가 이곳에서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4년 전 입양한 고양이 설, 다다와 함께 공간을 나눠 쓰는데, 이곳에서 사유하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처음에는 눈도 한 번 안 마주치던 녀석들이 같은 공간에서 숨쉬며 지내다 보니, 차차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더군요.(웃음) 어릴 적에 친가와 외가가 모두 안동 낙동강 인근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환경이 주는 ‘정서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좋은 환경과 디자인이 있는 공간 속에서 ‘매일매일을 의미 있게 천천히 살아가는 것’이 제 꿈이자 행복입니다.
美 내 안의 순수와 마주하다
‘동화책’
어린 손녀가 있습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동네 개들을 한 번씩 다 만나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꼬마지요. 원래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손녀가 생긴 후로 동화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손녀와 함께 동화책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아직은 제가 누군지 분간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웃음) 풍부한 색감의 동화책을 보다 보면 긍정적인 생각이 들고, 저 자신이 좀 더 간결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실제 프랑스나 덴마크에서는 여섯 살 이전까지 아이들에게 글씨를 가르치지 않아요. 그림책 위주로 보게 해 상상력을 키우도록 돕죠.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볼 순 없지만, 내년 봄엔 손녀와 함께 꼭 이 동화책들을 보고 싶네요.

aA 디자인 뮤지엄 김명한 대표

홍대 앞의 명소 ‘aA 카페’와 ‘aA 디자인 뮤지엄’의 대표다. 한때 패션 디자이너로도 일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아지오’를 오픈해 이탤리언 레스토랑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7년 문을 연 aA 디자인 뮤지엄은 전 세계 스타 디자이너들의 가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곳. 건축 및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과 관계자라면 꼭 한 번은 들러야 할 국내 디자인 가구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