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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선으로 도시 건축의 다른 미래를 제시하다

건축가 황두진

글. 김희선 사진. 이원재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업들로 '한옥 건축가'란 수식어를 획득한 건축가 황두진. 요즘 그의 이슈는 '무지개떡 건축'이다. 회색 도시를 바꾸는 비결로 제안한 도시형 건축물로 그는 웨스트빌리지,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무카스 사옥 등을 통해 무지개떡 건축의 실체를 보여 주었다. 도시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으로 도시의 희망을 설계하는 황두진건축사무소 황두진 소장.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아주산업 경영혁신팀 전지현 팀장이 그를 만났다.
소장님은 5~6년 전부터 ‘무지개떡 건축’을 제안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지난해 『무지개떡 건축』을 출간한 데 이어 최근엔 <서울신문>에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를 연재 중이시죠. 무지개떡 건축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주거와 다른 기능이 복합된 건물을 말합니다. 건축 용어로 ‘중층 고밀도 주상복합 건축’이라고 하는데, 주상복합이나 상가 주택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예요. 한데 무지개떡 건축이 넓은 의미에선 주상복합 건축의 개념에 포함되지만 세부적으론 차 이점이 명확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상복합은 말이 ‘복합’이지 대부분 주거 용도, 즉 단일 용도로 짓기 때문이지요. 상업 지역에 고급 아파 트를 초고층으로 지은 것이랄까요? 그래서 제가 말하려는 개념 전 달이 힘들 것 같아 무지개떡에 비유한 것입니다. 무지개떡 건축은 상가 주택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오늘날의 사회적 환경에 맞게 좀 더 진화하고 발전시킨, 유니크한 일종의 고유명사와 같습니다.
국내외 통틀어 무지개떡 건축의 좋은 사례로 어떤 건물이 있을까요?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카사밀라Casa Mila’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카사밀라는 광기 어린 건축 가의 독특한 조형 세계를 보여 주는 사례지만 건축적 수사학을 걷 어 낸 카사밀라는 놀랍게도 무지개떡 건축입니다. 지하 1층~지상 8층의 카사밀라는 주차장, 상가, 아파트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조 각 같은 환기구 등이 있는 옥상도 누구에게나 개방되지요. 사실 해외에는 무지개떡 건축이 정말 많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규모와 층수만 다를 뿐 단일 용도로 지은 ‘시루떡 건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주거면 주거, 업무면 업무, 상업은 상업, 이런 식이죠.
이쯤에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지개떡 건축이 왜 필요한가요?
오늘날 우리는 단일 용도로 지은 시루떡 건축 일색인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주거지에서는 오직 생활만 하고 일하는 곳에서는 일만 하 지요. 그 탓에 수많은 인구가 하루에 최소 두 번씩 대규모로 이동합 니다.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이동 수단이 동원되는데, 이는 모두 자 원과 에너지의 무한한 소비를 전제로 합니다. ‘걷고 싶은 도시’, ‘저녁 이 있는 삶’은 꿈과 환상에 불과한 것이 오늘날 도시민의 모습입니 다. 무지개떡 건축은 한 지역의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적절하게 조 화시키는 데 효과적인 건축 유형입니다. 둘을 한 건물에 공존하도록 만드니까요. 결과적으론 도시민의 삶의 질이 달라지겠지요.
그렇다면 무지개떡 건축을 통해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할까요?
우리나라의 도시화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당장 우리 주변 만 보더라도 십중팔구가 도시에 사는 사람입니다. 도시를 도시답 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밀도’와 ‘복합’인데, 이 둘을 결합하면 도시 적인 장점이 커집니다. 도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용무를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다만 적절한 밀도가 유지되어야 그 가능성이 높아 집니다. 일터와 집이 가까이 있는 직주근접(職住近接)이 이루어지 면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옥상에 마당을 조성하면 도 시에서도 경관을 즐기며 야외 생활을 할 수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도시의 삶은 이런 거예요. 집에 찾아온 친구와 1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집 근처 갤러리를 가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저녁을 해 먹는데 이 모든 것이 반경 5~10분 거리에서 이뤄지는 도시요. 무지개떡 건축으로 지어진 도시라면 충분히 가 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소장님은 무지개떡 건축을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대학 3학년 때 설계 과제 때문에 인사동을 찾았는데, 기초 조사 를 하는 과정에서 주거 기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 었어요. 낮에는 인파로 북적이지만 밤이 되면 사람이 없다는 이야 기도 들었고요. 그것이 안타까워 ‘인사동이나 재동 같은 구도심에 사람이 계속 살려면?’이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한 건물에 여러 가지 도시 기능을 담고 꼭대기에는 마당이 딸린 주거 공간을 들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후에도 이 문제는 저를 붙잡았 어요. 그리고 오십 대에 가진 나의 대답은 ‘무지개 건축’이었습니다.
다른 시선에서 비롯된 물음의 답을 아이디어로 찾으셨네요. 제가 몸담고 있는 경영혁신팀은 회사에서 가장 창의력을 요구하는 부서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창의력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소장님은 아이디어나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창의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어서 평소 공부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한 창의력은 일상과 분리된 것이 아니에요. 보편성의 설계 위에서 꽃이 피는 것이지요. 한국 사회에선 보편성을 회복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건축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보편적 기준에서 타당성 여부를 질문해야지 한국적이냐 아니냐 를 따져선 안 되지요. 보편적 가치를 갖는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을 막론하고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소장님은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세요?
세계적인 조경 디자이너 캐스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과 친분이 있는데, 언젠가 그분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건축가로서의 삶이 슬럼프의 연속 같고, 무엇을 해도 뜻대로 안 될 때였지요. 그녀는 슬럼프에 빠지면 현재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생각한 다음 그와 관련된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는 식으로 집중한다고 해요. 한번은 아프리카 미술에 빠져서 그에 관한 도서를 읽고 여행을 가고 사람을 만났는데, 결국 그렇게 알게된 건축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관련한 작업을 했다고 해요. 저 역시 일이 안 풀리면 관심 있는 주제를 공부합니다.
다양하게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고, 시간 낭비도 안 하는 길입니다. 어느 단계가 되면 내가 하는 일과 연결이 되기도 하죠.
캐스린 구스타프슨처럼 말이죠. 요즘은 1960~1970년대 아파트에꽂혀 있어요. 단지화되기 이전의 아파트에서 배울 점이 많더군요.
소장님도 아시다시피 아주산업은 건자재 전문 기업입니다.
우리나라 건축 발전을 위해 우리 회사를 포함한 건축 관련 회사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건축가로서 반가운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대량생산 위주여서 자재의 다양성이 떨어집니다. 종류가 한정적이라 응용해서 쓸 수밖에 없지요. 타일과 벽돌이 대표적입니다. 예전에는 타일 종류가 다양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예를 들자면 코너 타일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어요. 벽돌 역시 직각 일색이라 설계 목적에 따라선 잘라서 사용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다양한 자재 메뉴가 있으면 참 좋겠어요. 양질의 보편성을 생각해 봅니다. 보편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특수’라 하는데, 특수는 보편의 다양성 속에 있어야 합니다. 무지개떡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회사들이 약간의 다양성을 보편화한다면 건축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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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선
보편성을 회복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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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장님과의 만남은 집과 도시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무지개떡 건축이 하루 빨리 보편화되어 삶의 질이 좀 더 향상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소장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저의 인생 목표는 간단해요. 쓸모와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건물을 많이 설계하는 것입니다. 특히 제 기준에서 만족할 만한 무지개떡 건축을 얼마나 많이 짓느냐가 건축가로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내가 좋은 예를 많이 만들어 내 설득력이 있으면 다른 이들도 시도할 테고, 결과적으론 좋은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무지개떡 건축을 알리는 집필 활동과 건축 작업을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이 같은 저의 목표와 포부는 결코 작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시,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작업이니까요.

건축가 황두진의 애장품은 최근에 나온 그의 신간 『황두진-다공성 구축술 시스템』. 2002~2013년의 황두진 건축 작품을 선별한 모노그래프로 건축가 황두진의 건축적 관심사인 중첩된 기하학, 다공성,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 시스템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아주인에게 드립니다. 인터뷰어가 되길 원하는 분은 『아주 좋은 날』 편집팀으로 연락 바랍니다. (담당: 커뮤니케이션팀 ajupr@a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