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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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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

금기숙 교수의 여가미식(餘暇食美)

글. 한율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건 하나도 없다. 누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름답다는 것의 기준이 달라질 뿐이다. ‘패션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동향의 정점에 서 있는 금기숙 교수의 시선에는 ‘전통과 현대’, ‘새로움과 익숙함’, ‘신과 구’의 조화로움이 존재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는 그녀의 여가식미(餘暇食美)가 더 궁금한 이유다.
흰색과 빨간색의 영롱한 구슬과 날카로운 철사를 이어 만든 드레스 앞에서 사람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생존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감흥을 담은 금기숙 교수의 옷은 사람이 입을 수 없기에 어쩌면 더 매혹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업은 패션의 이미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패션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금 교수의 의상을 통해 말끔히 상쇄된다. 예술로 형상화된 의상 속에는 꿈, 환상, 판타지가 담겨 있다. 아니 어쩌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초반 금기숙 교수와 패션 관련 전문가들은 환경문제를 고찰했다. 하나의 옷이 세상에 나온 후 다시 사라질 때까지 수백, 수천 년이 걸린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 의식이 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금 교수가 ‘정화’를 상징하는 연꽃 이미지로 ‘로터스(Lotus) 드레스’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소재는 버려진 철사와 한복집에서 나온 옷감. 일상의 폐품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고, 이것이 국내 패션아트의 시발점이었다.
“철사를 하나하나 꼬다 보면 조금씩 밀도가 높아지면서 형상이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이 제게는 하나의 깨달음 같은 거예요. 불명료하고 불안한 마음 상태가 서서히 해소되면서 자유로워지는 거죠. 그런 과정이 모이면 지혜가 되어요.”
금기숙 교수는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여기에는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닌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잘 켜지 못하는 자신의 가야금 연주를 듣고 웃는 가족들의 행복한 표정, 순수함을 간직한 때 묻지 않은 자연, 도용에서 느껴지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은 순수하고 다양하며 자연적이면서 개성적이다. 그녀가 유금와당박물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 또한 다양한 문화와 그 속에 깃든 다양한 아름다움이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금기숙 교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요즘 찾은 또 다른 행복
취미를 한번 만들어 보자 싶어 가야금을 시작했어요. 배운 지 4개월쯤 되었습니다. 양악에선 피아노가 기본 악기인 것처럼, 국악에서는 가야금이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가야금에 끌렸던 이유는 여성스러움 때문이었어요. 가만히 앉아서 가야금을 뜯는 자세와 소리가 그렇습니다. 매일 10~20분씩 연습하는데,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큽니다. 지난 5월에는 유금와당박물관 정원에서 공연도 했습니다. 물론 가족들 앞에서였지만요. 제 연주를 듣고 가족들이 즐겁게 웃더군요. 제 연주가 무척 멋졌다면 아마 그렇게 웃지 않았을 거예요. 모든 걸 다 잘할 필요는 없지요. 익숙하지 않고 서툴러도 그대로 재미가 있으니까요.
느림의 미학을 느끼다
순천 선암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송광사도 마찬가지고 전라도 지역이 대부분 그런 거 같아요. 때묻지 않은 듯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청정 지역이 많습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전라도 지역에 가면 꼭 이 말이 떠오릅니다.과거에는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한 소외된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혜택이 돌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유금와당박물관 정원도 제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잡초를 뽑고 꽃을 심는 일터인 동시에 기꺼이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수 있는 평안한 장소입니다.
보랏빛 채소가 내는 깊은 맛
저는 특히 가지 요리를 좋아합니다. 가지는 오버진(Aubergine) 컬러도 참 예쁘고 여러 가지 레시피로 다양하게 활용해 먹을 수 있는 점도 매력인 것 같아요. 부드러운 식감은 어디에 내놓아도 견줄만 한 게 없지요. 짙은 보랏빛 속에 감춰진 흰 속살이 품고 있는 깊은 맛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제가 가지를 즐겨 먹게 된 건 2006년부터입니다. 일 때문에 중국에 갔다가 다양한 레시피의 가지 요리를 맛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지 요리 중 제가 추천하는 것은 가지 파스타입니다. 어쩌면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 오묘하게 깊은 맛을 내며 식감을 자극합니다.
아름다움은 시대를 관통한다
도용 수집은 제가 오래전부터 해 온 일입니다. 흙을 빚어 구워 낸 인형인 도용은 실물 자료가 희귀하기만 한 그 시대 패션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귀중한 자료입니다. 도용을 시대별로 나열해 보면 미의 기준도 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예컨대 수나라 여인은 호리호리하고 다소곳한 느낌이지만 당나라로 가면 통통한 몸매에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하는 몸짓이 나타나니까요. 중요한 사실은 그중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건 없다는 점이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우리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실 사람들 저마다 개성과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것을 발견해 내는 과정이 중요할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