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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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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던 꿈이
함께하여 현실이 된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한여름 밤 달빛을 닮은 환상적인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작품입니다. 어긋난 운명에 눈물을 흘리던 젊은 연인이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들은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지요. 함께한다는 것은 한여름 무더위처럼 때론 버겁고 때론 지치지만 해내고 나면 아름답고 충만한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름은 혼자인 게 좋은 계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입니다. 시원한 수박은 나눠 먹어야 더 맛이 좋고, 낯선 곳으로의 휴가는 동반자가 있어야 즐거우며, 기나긴 열대야도 친구와 함께라면 지루하지 않으니까요. 몽환적인 한여름 밤의 꿈이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혼자 꾸던 꿈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한다면 저절로 용기가 샘솟습니다. ‘함께’라는 용기가 만들어 낸 재미있는 이야기를 「아주좋은날」 여름호에 펼쳐보았습니다.
[ELBPHIL HARMONIE]
함부르크 시민들의 자부심,
엘프필하모니
2017년 1월 11일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Hafen City 지역 엘베 강변에 거대한 물결이 일었다. 콘서트 홀 엘프필하모니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의 침묵을 깨고 개관한 덕분이다. 3개의 콘서트 홀과 레스토랑을 비롯해 15층짜리 아파트까지 갖춘 엘프필하모니는 오래된 창고 건물을 개조해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함 부르크 시와 시민들이 힘을 모아 완성해 낸 의미 있는 공공재다.
1960년대에 지어진 거대한 벽돌 창고를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개조하겠다는 취지로 엘프필하모니 건축 프로젝트가 시작된 때는 2007년. 하지만 예산의 10배가 넘는 비용이 투입되면서 완공일이 미뤄졌고, 결국 공사는 10년 동안 지속되어야 했다.
그사이 시의 사정 또한 계속해서 변화했기에, 혼란은 끊일 줄 몰랐지만 시와 시민들은 흔들림 없이 엘프필하모니 건설을 지지했다.
이처럼 모두가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낸 결과 물결 모양을 닮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모든 면에서 지 속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역 관계자의 말처럼, 많은 이의 노력에 힘입어 문을 연 엘프필하모니는 단숨에 음악의 나라 독일의 보석이자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나 아가 10년간의 스토리를 품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최고의 연주회는 함부르크 시민들의 빛나는 자부심이 되어 감동의 물결을 이어가고 있다.
[SENMAIDA]
자연과 사람의 삶이 더불어 그려낸 풍경,
마루야마 센마이다
일본 미에현의 구마노 시에 위치한 계단식 논 마루야마 센마이다丸山千枚田의 풍경은 여름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는 1,000개가 넘는 작은 논이 펼치는 황홀한 풍경 앞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이 풍경을 지키고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농사를 지어야 했으므로 계단식 논을 조성했지만 현대에 이르러 경제적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점차 지양해 왔다. 마루야마 센마이다 역시 약 400년 전에는 2,200개가 넘는 작은 논들로 이뤄진 일본 제일의 계단식 논이었으나 쌀 가격 하락, 농업의 기계화, 농촌의 고령화 등 문제가 겹치며 1992년에는 그 개수가 530개까지 감소하고 말았다. 마루야마 지역 주민들은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이대로 잃을 수는 없습니다. 멋진 경관에 담긴 전통 농경 문화를 후세에 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라고 말하며 힘을 모았고 1993년 지역 주민 전원이 마루야마 센마이다 보존회를 결성했다.
이후 꾸준히 보존 활동을 펼친 결과 마루야마 센마이다는 본모습을 되찾아 갔다. 나아가 계절마다 다양한 행사와 축제를 열며 주민들과 소중한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전통과 자연, 사람의 공존이라는 마루야마 센마이다의 메시지는 1994년 지정된 ‘마루야마 센마이다 조례’에 담겨 지금에 이른다. 계절마다 표정을 바꾸는 주민과 자연의 이야기가 이 여름을 한층 더 싱그럽게 만든다.
[RUNPIANO]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모두의 피아노,
달려라피아노
거실에 방치해 두었던 오래된 피아노를 거리로 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13년 시작된 ‘달려라피아노’ 프로젝트는 거실이 나 공공시설에 방치된 중고 피아노를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아 시각 예술 분야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채색한 후 거리나 공원에 설치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생명력을 잃었던 피아노를 누구에 게나 열린 악기로, 삭막한 거리를 예술가와 시민의 공연장으로 변신시켜 온 달려라피아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소통이 단절된 도시 곳곳에 예술과 대화의 씨앗을 심어 왔다.
달려라피아노 프로젝트는 선유도 공원, 신촌, 광화문, 서울숲 공원, 경의선 숲길 등 다채로운 공공장소에서 큰 호응을 얻어 왔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워크숍을 진행하는 부스나 독서 공간으로의 전환 등 문화를 주제로 한 변신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도시의 평상처럼, 사람들은 피아노를 매개로 한곳에 머물며 새로운 관계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달려라피아노는 이름처럼 음악과 예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연주를 펼친다. 2017년 상반기에는 기존의 방식에 기동성을 더해 천재 피아니스트 박종화 교수와 함께 대형 트레일러에 피아노를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처럼 멈출 줄 모르는 달려라피아노의 질주는 일상의 예술, 모두 의 예술이라는 꿈을 향해 달음질치며 우리의 일상을 더욱 즐겁게 변화시키는 경쾌한 마라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