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영원한 뮤즈
그리고 솔메이트
글 정현주 일러스트 민지홍
평생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은 동료이자 끝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사랑을 나누었던 영혼의 동반자를
소개한다. 먼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와 문인이자 미술 평론가였던 김향안. 아내 김향안은 남편
김환기가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한 예술적 동지였다. 다음은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로베르트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아 곡을 쓰고, 클라라는 남편의 곡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완성했다. 혼자서 도달하기엔 힘겨운 높은
예술의 경지에 함께라는 이름으로 도달한 두 부부.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사랑을 성장시킨 지성,
김환기 & 김향안
김환기는 한국적 서정주의를 서구 모더니즘에
접목해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이룬 한국의
대표 화가다. 1913년 신안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1930년대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환기는 김향안을 만나게 된다.
김향안의 본래 이름은 변동림으로 1938년
「매일신보」에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수필집
『파리』, 『우리끼리의 얘기』, 『카페와 참종이』
등을 낸 문인이었다. 두 사람이 만날 당시
김환기는 아이가 셋 있는 이혼남이었다.
이를 이유로 변씨 가문에서 결혼을 반대하자
변동림은 자신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르기로 한다. 1944년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고 김환기는 자신의
아호였던 향안鄕岸을 아내에게 선물한다.
이후 김환기와 김향안은 독립된 둘이면서
협력하는 아름다운 솔메이트로 서로의 예술을
성장시키며 평생을 함께한다.
예술을 완성시킨 사랑,
로베르트 슈만 & 클라라 슈만
낭만파의 선구자 로베르트 슈만은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다. 라이프치히 최고의 피아노 교습
선생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생으로
있던 무렵, 로베르트는 스승의 딸 클라라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 클라라는 유럽 전역에서
칭송받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테크닉이 뛰어나고 곡 해석
능력마저 출중했다. 피아노 연주는 물론
성악, 바이올린, 대위법을 비롯해 작곡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여
여자 베토벤이라 불릴 정도였다. 두 사람은
프리드리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40년
결혼에 성공했다. 그 해는 로베르트의 가곡 중
절반 이상이 탄생해 ‘가곡의 해’라고 불린다.
로베르트와 클라라는 지대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음악적으로 함께 성장했고 수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사랑해 세계
예술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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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사람과 실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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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환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서 교수로 재직하며 달, 산, 매화, 달항아리 등을 소재로 한국적 정서를 그림에 담아냈다. 학계에서도 미술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내면의 답답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구라파에 가고 싶어. 도대체 내 예술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가 있어야지.”
“가면 되지 뭘 그러우.”
아내의 대답은 간단했다. 김환기가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면 김향안은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바로 다음 날 프랑스어 책을 사다가 공부를 시작했고 전쟁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파리로 먼저 날아갔고 남편의 전시회를 준비하는 한편 대학에
다니며 미술사와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
김향안은 예술가의 아내가 자신의 직업이라 생각했고 전문적으로 해내기를 원했다. 예술가 남편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본인의 예술에 몰입하는 것, 함께 성장하는 것이 곧 오래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김향안은 프랑스어를 전혀 못 하는 남편을 위해 미술 이론을 번역하는 한편 스스로의 미술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본래 문인이었던 그녀는 미술 평론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남편과의 교감은 깊어 갔다. 두 사람은 당시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3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은 부부의 예술 세계를 확연히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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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협조로 세상에 알려진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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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과장을 지내던 김환기는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수상의 기쁨을 맛본 뒤 귀국하지 않았다.
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아틀리에를 차렸다. 파리 생활을 통해 얻은 용기 덕분이었다.
이번에는 김향안이 뒤를 따랐다. 서울에
서 누리던 안정된 생활은 그 길로 끝이 났다. 적지 않은 나이에 두 사람은 난생처음 가난을 경험했지만 김환기는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으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1970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제1회 한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환기는 자신을 더욱 몰아 붙였다. 잠자는 것도 잊은 채 그림에 몰두했다.
아내가 최선을 다해 돌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작업과 거듭되는 노동으로 김환기의 몸은
쇠약해져 갔다. 결국 그는 1974년 목디스크
수술을 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김향안은 늘 부부란 하나가 하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협조하는 사이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의 협조는 계속되었다. 남편의 작품을 들고 세계를 돌며 전시를 여는가 하면, 평론 활동을 통해 김환기 작품의 가치를 알렸다. 한국으로 돌아 와서는 환기재단을 설립하고, 부암동에 ‘김환기 미술관’을 지었다. 나무 하나, 창문 유리 하
나 남편의 그림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미술관은 그 자체로 김환기의 작품을 담기 위한 완벽한 집으로 우리 곁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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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손끝에서 처음 연주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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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비크에게 클라라는 딸인 동시에 수제자였다.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로베르트와 클라라의 관계를 맹렬히 반대했다. 당시 피아니스트로서 로베르트에겐 미래가 없
어 보였기 때문이다. 무리한 연습으로 손을 다친 상태였으며 정서적으로도 매우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반대를 이겨 내고 사랑을 이루었다.
클라라는 로베르트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는 뮤즈인 동시에 헌신적인 아내였다. 로베르트는 예민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작곡을 시작하면 그 무엇도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클라라는 집안일은 물론이고 아이들 양육까지 전담했다. 7명의 아이를 양육하고, 고단한 가사 노동을 계속하면서도 클라라는 음악원에서 수업해 생계를 유지했고, 유럽 순회 공연을 다니며 자신의 예술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로베르트는 작곡에 몰두해 독일 가곡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여럿 남겼는데, 그중에는 클라라에게 헌정하는 곡이 많았다. 로베르트가 작곡하는 모든 음악의 첫 연주는 늘 클라라가 했다. 그의 음악을 클라라 이상으로 해석해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로베르트에게
클라라는 대체 불가능한 연주자였으며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클라라에게도 남편은 그런존재였다. 클라라 역시 음악적 도전을 멈추지 않은 결과 1846년 구성과 서정성이 뛰어난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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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율로 기억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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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낭만주의 천재 음악가의 전형을 보여주던 로베르트 슈만은 정신병으로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 정서가 불안하고 환청이 심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결국 1853년
로베르트는 라인강에 투신했고, 다음 해 요양원에 들어갔다.
세상을 떠날 즈음 열에 들뜬 로베르트의
귓가에 끊임없이 울려 퍼진 것은 오직 하나의
음, 라(A)였다고 한다. 라는 알파벳의 첫 글자이며 화음의 기초인 동시에 독일어 표기법에서
는 클라라를 나타내는 약어이기도 하다.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남편에게 아내는 인생의 전부였던 셈이다.
1856년 로베르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거의 모든 곡에는 클라라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었다. 홀로 남은 클라라도 여전히 로베르트의 사랑 안에 있었다. 1896년 숨을 거둘때까지 그녀는 남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했다. 남편의 음악에 대한 평론을 써서 잡지에 실었고 세계를 돌며 연주회도 열었다.
라이프치히에 있는 슈만 하우스는 로베르트와 클라라가 결혼 후 4년간 살았던 곳이자,
수많은 가곡과 봄의 교향곡이 탄생한 곳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둘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그들의 결혼기념일 즈음에 슈만 페스티벌을 연다. 두 사람이 남긴 음악과 그 음악 속에 깃든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했던 풍경 속에
남아 시간이 흘러도 시들지 않을 것이다.
정현주 작가 감성적이고 단정한 말과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매만져 왔다. 주요 저서로 『그래도, 사랑』,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