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017 SUMMER

people

소통에 깊이를 더하는
언어의 온도
조승연 작가

글 김희선 사진 장호 장소 협찬 어반플레이

조승연은 7개 언어를 섭렵한 언어학자이자 음악과 미술, 역사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인문학자다. 아는 분야를 찾는 것보다 모르는 분야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박학다식함은 물론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도 명쾌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아 왔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만큼 관계의 스펙트럼이 넓고, 소통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그를 아주호텔앤리조트 김유리나 매니저가 만났다. 이들의 대화 속에서 소통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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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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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7개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언어 천재’, ‘외국어 공부의 달인’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죠.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라틴어를 공부한 것이 가장 큰 계기였어요.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동양인은 이공계 과목만 잘하고 인문계 과목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더라고요. 수학이나 과학은 점수를 잘 받아도 인정을 안 해줬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라틴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라틴어는 미국 학생들조차 어려워하는 언어잖아요.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어서 라틴어 공부에 도전하게 되었죠.
라틴어의 어떤 매력이 언어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는지 궁금합니다.
라틴어는 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닙니다. 학문을 탐구하는 데 쓰이는 사어死語예요. 문학, 문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여느 언어보다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죠.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와 같은 고대 로마 시인들의 작품으로 언어를 배운다는 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 과정에 서 언어, 문화 학습의 즐거움을 느꼈고, 더 많은 언어를 배워 보자는 목표가 생겨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중국어 등을 공부했지요. 요즘은 일본어를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는 중인데 내년에는 베트남어와 인도네 시아어 공부도 시작해 보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어 울렁증’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어를 두려워하기도 하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나라 영어 학습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어의 대상이 없다는 거예요. 언어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영어 공부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대상이 시험지이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사람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거든요. 말에 제스처 를 더해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콜라를 주문할 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Coke’ 또는 ‘That’ 하면 완벽한 영어 문장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시험지가 대상일 때는 얘기가 달라지죠.
작가님은 “단어는 외우는 게 아니다”란 말씀을 자주 하세요. 단어를 익힌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암기는 이해의 실패입니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머리에 남았을 테니 굳이 암기할 필요가 없어요. 예를 들어, ‘포근하다’란 단어를 봅시다. 정확 한 뜻을 말하지는 못해도 그 느낌을 우리는 알고 있죠. 그런데 ‘소프트 Soft’란 단어를 듣고 ‘부드럽다’는 뜻, 즉 단어가 튀어나온다면 그건 암기의 결과예요. 우리나라 언어는 자연스럽게 몸과 연결되는데 영어는 왜 몸이 아닌 한국어와 연결이 될까요? 암기를 통해 머리로만 알고 있기때문이에요. 그건 정확히 ‘아는’ 단어가 아니에요. 암기한 지식은 ‘없는’ 지식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단어를 체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단어 보다는 문화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자동차를 좋아하면 자동차 잡지를 읽고, 힙합에 관심이 있다면 가사를 보고 듣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모르는 단어가 생기면 사전을 찾아보고, 단어의 쓰임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훨씬 빠를 거예요.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인데 소통하려는 노력 없이 암기만 하면 제대로 습득이 안 됩니다. 문법공부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소통하는 과정에서 단어의 뜻이 궁금해져야 한다는 의미에요. 문법은 그 다음 문제죠.
언어를 공부하려면 근본적으로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해 오셨죠. 어떻게 하면 다른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나라마다 문화의 독특함은 분명히 존재해요. 하지만 이보다 강한 것이 인간의 보편성이더군요.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고, 슬프면 울고, 때리면 아프고, 아름다운 이성을 보면 사귀고 싶고…. 이렇듯 사람은 하드웨어가 똑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것일지라도 이미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는 거라면, 배워서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죠. 우리나라 문화 또는 한국 사람과 맞지 않다는 선입견만 버리면 다른 나라의 문화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호기심은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모든 것은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지요.
언어 학습법을 잘 알고 계셔서인지, 말씀하는 모습을 보면 말하는 방식이 확실히 남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아마도 제가 발표나 토론을 중시하는 교육 환경에서 자란 덕분일 거예요. 선생님 말씀을 얼마나 잘 듣느냐가 아닌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점수를 받는 교육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고요. 저는 평소에도 토론이나 논쟁을 통해 솔루션을 찾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격양된 분위기를 불편하게 생각해서 가끔 문화 충돌을 겪기도 하죠. 상대방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아 끈질기게 물어보거나, 논쟁하며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 재미있어 몰입할 뿐인데 감정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특히 조직 생활에서 그렇죠. 어떤 사안에 대한 솔직한 의견과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데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비판하는 것이지 사람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물론이고 상대방 또한 느껴야 해요. 그러면 논쟁이 붙어도 오해가 생기지 않아요. 상대가 윗사람이면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해요. “선생님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저의 관점에선 이런 생각이 듭니다”라고요. 후배일 경우에는 더 조심스럽긴 해요. 하지만 이 역시, 업무 비판과 사람에 대한 평가를 분리하는 게 중요해요. 이렇게 사람과 의견 을 철저히 분리한 상태에서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
「아주좋은날」의 2017년 여름호 테마는 ‘혼자 꾸던 꿈이 함께하여 현실이 된다’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할 때 대화와 소통이라는 주제가 빠질 수 없지요. 작가님은 소통을 하는 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나는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궁금증이 사라지고 그래서 질문도 안 하게 되거든요. 서로가 잘 아는 사이여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강연을 몇 개씩 마치고 온 날, 친구가 저에게 고전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하면 너무화날 것 같아요. 그런 날에는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로 머리를 식히는 게 더 적절하죠. 친구는 제가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제안한 것이겠지만 ‘지금’ 제 상태는 매번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소통은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야흐로 바캉스 시즌입니다. 바캉스를 떠나는 아주 직원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바캉스라는 단어가 ‘비움’이라는 뜻이에요. 우리나라에는 바캉스에도 무언가를 채우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올여름에는 비움의 시간, 진정한 바캉스의 시간을 한번 가져 보세요. 최대한 자극이 없는 곳으로 가서 휴대전화부터 꺼 두세요. 예전에 일본 후지산에서 텐트를 치고 휴대전화를 꺼 둔 채로 온종일 산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자체로 너무나 좋더라고요. 휴대전화를 끄고 3시간 정도는 무척 답답할 텐데요, 꾹 참고 견뎌야 합니다. 경험해 보시면 알겠지만 휴대전화를 2박 3일만 끄고 있어도 많은 것이 달라져요. 우리는 비움을 위해 비워야 합니다. 이번 바캉스에는 휴대전화 없는 진정한 비움의 시간을 즐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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