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017 SUMMER

motor story

온기와 즐거움의 메신저

트럭의 무한한 변신

글 김한용 〈모터그래프〉 편집장 일러스트 민지홍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췄을 뿐 아니라 활용 범위도 뭇사람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자동차가 바로 트럭이다. 승용차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는 동시에, 승용차로는 불가능한 일까지 두루 해내는 자동차. 담는대로 모습이 달라지는 트럭에 담긴 따뜻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따라 질주해 보자.
태생부터 타인을 위한 차
승용차는 개인적인 자동차지만 트럭은 결코 그렇지 않다. 택배 배송은 물론이고 건축 자재 운반까지 해내니 어찌 보면 자신보다 남을 위한차, 우리 생활에 한순간도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라 할 만하다. 자동차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자동차 판매 순위를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포드의 F 시리즈가 압도적인 1위, 이어 쉐보레 실버라도, 닷지 램픽업 순으로 Big 3의 트럭이 최상위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트럭의 판매 대수 또한 언제나 상위권이다.
지금은 캠핑카, 푸드 트럭 등 무한 변신이 가능한 자유로운 자동차의 상징이 된 트럭이지만 그 태생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자동차의 성격이 강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는 자그마한 픽업 트럭이 있다. 블루 원더Blue Wonder라는 별명이 붙은 이 차는 벤츠의 전설적 경주차 300SL을 실어 나르는 게 목적이 었는데, 어찌나 빨랐던지 경주차를 실은 상태로도 시속 170km로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랑프리 시리즈의 특성상 차를 빨리 옮기면 그만큼 연습할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트럭은 레이스 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장치일뿐만 아니라 벤츠 레이싱 팀의 효과적인 무기이기도 했다.
가장 빠른 트럭을 만든 게 벤츠라면, 현대인의 시각에서 ‘트럭’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최초의 차는 1896년 다임러의 창업자 고틀립 다임러가 만든 트럭이다. 고틀립 다임러는 초기부터 육·해·공을 망라하는 이동 수단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만큼 많은 자동차를 두루 만들었다. 특히 다임러의 트럭은 독일의 산업화와 맞물려 원료와 대량 생산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독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온기와 가치를 전하는 트럭
이처럼 태생부터 남을 위해 봉사해 온 트럭은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따뜻한 나눔의 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나눔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동식 빨래차가 그 대표적 사례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시작된 이동식 빨래차는 노숙자의 옷가지나 이불을 2시간 만에 세탁해서 뽀송하게 말려놓는 것까지 해내 많은 이의 감탄을 독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차가 수해 현장에서 빨래를 대신할 수 있는 이동식 빨래 차량을 공급한 바 있고, 삼성전자도 행복나눔빨래터라는 자원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동식 빨래차는 몸이 불편해 직접 빨래를 하기 어려운 이웃들의 근심과 걱정까지 깨끗하게 세탁합니다.

이동식 빨래차 못지않게 친근한 이름이 있다. 바로 사랑의 밥차다. 단체 음식 공급의 가장 효율적인 장비인 트럭은 수많은 기업은 물론 각 지역 사회의 취지에 맞추어 다채로운 모습의 밥차로 변신하고 있다.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통해 소외된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취지만큼은 한마음이 되어 우리 사회 곳곳을 든든하게 채우고 있다.

나눔의 고전이라 불리는 사랑의 밥차는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전하며 우리 사회 곳곳을 든든하게 채워줍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주의 샤워 트럭은 소극적인 지원을 넘어, 노숙자들의 삶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운영자 제이크 오스틴은 노숙자들에게 음식과 함께 각종 목욕용품을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했지만 정작 노숙자들에겐 그것을 사용할 공간이 없었다. 결국 그는 중고 트럭을 개조해 내부를 샤워 시설로 꾸민 후 노숙자들을 초대했다. 오스틴의 샤워 트럭에서 하루 평균 60여 명의 노숙자가 세면을 했고, 말끔해진 노숙자들은 인근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는 등 안정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샤워트럭은 노숙자들의 존엄성, 새 삶에 대한 자신감 회복을 통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꿀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주에 위치한 샤워 트럭은 노숙자들의 존엄성, 새 삶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 회복에 도움을 주는 트럭이지요.

BMW코리아는 트럭을 활용해 지역사회간 교육 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모바일 주니어 캠퍼스는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을 융합한 이른바 ‘STEAM’ 이론에 기초한 다양한 체험 시설물을 통해 자동차에 숨어 있는 기초과학 원리와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시설이다. 11.5t 트럭에 조성된 이 움직이는 학습장은 2012년부터 전국의 초등학교와 어린이 복지시설을 방문해 매년 1만여 명의 어린이에게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BMW의 모바일 주니어 캠퍼스는 매년 1만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학습 격차 해소라는 꿈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미국 어린이들에게도 트럭은 살아 있는 학습 현장이다. 미국 시카고의 트럭팜Truck Farm은 다큐멘터리 감독 이안 체니가 시작한 프로젝트다. 트럭에 작은 밭을 싣고 학교나 지역 공원 등을 방문해 도시 아이들에게 흙을 만지고 작물을 기르는 경험을 제공한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자연을 체험하게 하는 열린 트럭 농장에선 날마다 아이들의 감수성이 자란다.

도시 아이들에게 흙을 만지고 작물을 기르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는 미국 시카고의 트럭팜Truck Farm에서 아이들의 감수성이 자라납니다.

이야기와 즐거움을 싣고 달리는 트럭
그런가 하면 우리 곁에 추억과 즐거움을 배달해 온 트럭들이 있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수박, 가을이면 홍시, 겨울이면 귤. 제철 맞은 신선한 과일을 누구보다 빠르게 배달하며 계절을 알리는 과일 트럭은 정겨움의 상징이자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든든한 친구다. 구매량에 따른 가격이 정확히 매겨지는 대형 마트와 달리, 까만 비닐봉지에 한 주먹씩 더 얹어 주는 덤에 중독되면 과일 트럭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만 기다리게 된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수박, 가을이면 홍시, 겨울이면 귤. 일기예보 보다 먼저 계절을 알리는 과일트럭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든든한 가교입니다.

정겨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뻥튀기 트럭이다. “뻥이오!” 우렁찬 소리와 함께 퍼지는 국민 간식, 뻥튀기 튀기는 냄새는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온 동네 사람을 유혹하며 골목골목 머물다 가던 뻥튀기 트럭은 이제 골목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로 무대를 바꿨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면 여전히 “뻥이오!” 한 마디와 고소한 냄새로 모두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인기 스타라는 점이다.

뻥이오! 우렁찬 소리와 고소한 뻥튀기 냄새로 사람들의 침샘과 추억을 자극하는 뻥튀기 트럭은 아파트에서도 인기 만점이지요.

굳이 푸드 트럭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는 길거리 음식의 대부분은 트럭에서 만들어졌다. 길가의 포장마차 역시 트럭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년가량의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점점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푸드 트럭은 이제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개성이 담긴 다채로운 디자인과 세계 각국의 요리가 젊은 소비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승승장구할 전망이다.
푸드 트럭의 여세를 몰아 탄생한 패션 트럭도 있다. 미국이 한창 내수 경기 침체를 겪던 2010년 무렵 뉴욕에서 처음 등장한 패션 트럭은 높은 임대료를 극복하기 위해 트럭에 옷을 싣고 거리로 나선 데서 유래되었다. 국내에서도 몇몇 패션 트럭이 홍대와 강남역 인근에서 성업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소비층이 점차 인터넷 쇼핑몰 쪽으로 옮겨 가면서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색다른 개성으로 무장하여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할 새로운패션 트럭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로 인해 주춤하고 있는 패션 트럭이 색다른 마케팅으로 무장하여 고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그날을 기대해 주세요.

단순히 먹고 입는 것에서 벗어나 보고 즐기는 문화를 배달하는 트럭도 있다. 갤러리까지 찾아가기 힘든 이들이 의외의 장소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갤러리 트럭이다. 스마트폰 사진가 김민수 씨는 지난 2014년 트럭을 개조해 ‘스마트폰 사진가 김민수의 찾아가는 갤러리’를 선보였다. 그동안 찍은 사진 중마음에 드는 것을 인화해 트럭에 갤러리를 꾸리고, 도심과 시골을 누비며 이색 전시를 펼친그의 행보는 많은 이에게 잔잔한 감동과 예술적 경험을 선사했다.

갤러리까지 찾아가기 힘든 사람들에게 의외의 장소에서 예술을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 갤러리 트럭이 점점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하나의 개성 있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한 푸드 트럭의 즐거운 행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예정입니다.

미래에도 함께할 자동차, 트럭
트럭은 이처럼 어떤 이에게는 온기를, 어떤 이에게는 추억과 즐거움을, 어떤 이에게는 문화체험을 제공하는 변화무쌍한 자동차다. 용도와 쓰임이 다채롭고 자유로운 만큼, 자동차의 내일을 열어 가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다. 언론에선 언제나 우버나 웨이모의 자율주행 승용차를 떠들썩하게 언급하지만 완전 자율주행 기능이 가장 먼저 적용될 차종은 승용차가 아닌 대형 트럭일지 모른다. 물품이나 자재운반용으로 널리 쓰이는 트럭은 장거리 운전이 많고,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한다. 운행 영역이 제한적이고 단조롭기 때문에 자율주행을 수행하기에 더 알맞다. 트럭의 자율주행 기능이 실현되면 트럭 운행의 위험성 또한 줄여 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볼보트럭의 ‘비전2020’의 영상을 통해 볼보트럭의 미래 개발 방향도 역시 자율주행을 지향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더해 대다수의 트럭 브랜드는 트럭의 안전 기능을 고려해 값비싼 부품을 사용하거나 첨단 기능을 적용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공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자동차의 디자인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어선 안 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트럭은 주변 사람들의 생활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 스웨덴 볼보트럭 디자인 담당자의 말이다. 힘 세고 출력이 좋아 일명 ‘괴물트럭’이라 불리지만 도시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디자인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공존과 나눔, 즐거움의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트럭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새로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