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017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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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거칠고 따뜻한 나무

그리고 아버지의 손

목소반 장인 양병용의
餘暇食美(여가식미)

글 유재원 사진 장호

여름이면 아버지의 손을 떠올린다. 간지러운 등을 어루만져 주면 금방 시원해져서 까무룩 잠들었던, 거칠지만 따뜻한 기억. 6월의 어느 날, 파주에서 아버지의 손을 가진 목공 장인을 만났다. 대단한 작가보다는 그저 매일 소반을 생각하고 나무를 더듬으며 성실하게 노동하는 사람이고자 한다는 양병용 작가. 누군가가 편히 기댈 수 있는 한 그루의 좋은 나무가 되기를 꿈꾼다는 그의 이야기가 나무 향처럼 은은하게 번졌다.
“고등학교 시절 건축과 목공 실습 첫 시간이었을 거예요. 톱질을 하는 순간 목공이 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천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톱질과 끌질을 반복하다 보니, 반복적인 수고와 노동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참 경이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을 깨달은 17세 무렵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무와 동고동락해 온 양병용 작가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구 만드는 현장에서 일할 때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실수한 점, 배운 점, 변화되었으면 하는 점을 빼곡히 기록하는 성실한 청년이었고, 더 좋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 산업디자인 공부를 마친 2000년대 초반에는 사장되어 가던 전통 공예 기법, ‘갈이질Woodturning’에 푹 빠져 전국을 돌며 나무 갈이를 연마하던 열정 넘치는 목수였다. 명맥이 끊긴 전통을 더듬어 가며, 스스로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럴때마다 오래된 공예품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갈이질을 어느 정도 알리고 난 2012년 그는 소반 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일상 속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전통 기법이 살아 있으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소반을 선보이며 젊은 장인으로 불린 지 6년. 그 시간 동안 그는 전신에 옻이 오르는 고통을 감수하며 직접 옻칠을 배웠고, 더 세심한 선을 완성하기 위해 연장을 직접 개발하며 소반 작업에 전념해 왔다. 한자리에 머물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새로 배우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그가 17세 무렵에 느꼈던 그 운명이 곧 필연이었음을 증명한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많은 작품을 접하며 ‘왜 사람들은 이런 물건을 사용했을까?’, ‘왜 이런 물건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질문을 던져요. 아름다움이라는 본질이 지닌 감각과 생활속에서의 쓰임을 조화롭게 구현하려고 노력하죠. 소반엔 그런 요소가 많아서 재미있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탄탄하면서도 유연하다. 전통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선에서 세련된 긴장감을 더하고, 새로운 쓰임까지 세심하게 고려한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대접의 의미를 담은 소반 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좌식 생활을 하지 않는 현대인들을 위해 책상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미니어처 선반을 만드는 등, 넓은 시야로 그려 가는 그의 행보는 ‘전통의 현대화’ 그 자체다.
눈으로는 결을 보고, 손으로는 거친 표면을 느끼며, 각 나무의 자리를 찾아 준다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작업한다는 양병용 작가. 따뜻한 아버지의 손, 아름다움과 쓰임을 조화시키려는 태도, 성실한 매일의 노동으로 더없이 사랑스러운 소반을 완성해 내는 그의 거칠지만 따뜻한 여가식미를 만나 본다.

바른 정신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작업실
제가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정신입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업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의 정신과 마음 상태가 나무나 물건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작업실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마음과 정신을 바르게 가다듬어 좋은 소반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니까요. 작업실 옆에는 ‘반김craft’라는 갤러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저와 저의 소반들이 한마음으로 여러분을 반기는 공간이지요.

따뜻한 가장의 벅찬 행복, 가족과의 시간
요즘 저의 가장 큰 행복은 아내,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 저고리는 딸 이음이가 태어났을 때 친하게 지내던 고객 분이 직접 만들어 선물해 준 손누비 작품이에요. 참 예쁘죠? 지금까지 제가 따뜻한 아버지의 손과 마음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왔는데, 딸 이음이로 인해 진짜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이제 진짜 아빠의 손, 아빠의 마음이 되었다”고되뇌곤 하는데, 가끔씩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고향의 기억과 자연의 정서, 토마토
제 고향은 충북 보은입니다.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랐지요. 어렸을 때 토마토를 하나 먹으려면 먼 밭까지 나가야 했어요. 호두나무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펼쳐지던 자그마한 토마토 밭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하나 따서 통째로 들고 베어 먹으면 부드럽고 상큼한 것이 참 맛있었죠. 그래서 지금도 저는 열매를 생으로, 통째로 들고 먹는 걸 좋아합니다. 와이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지만 그렇게 먹어야지만 느낄 수 있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전통에 대한 신뢰와 경외, 함지박
전통 공예에 흠뻑 빠져 있을 때 인사동에서 구한 갈라진 함지박이 저의 애장품입니다. 옛 어르신들이 빨랫감이나 들밥(새참)을 나를 때 혹은 나물을 캘 때 사용하던 물건이에요. 그릇 깎는 기술을 습득하고 있던 당시에는 전통 기법(갈이질)으로 깎은 이 함지박에 매료되어 여러 자료를 살피고 전국 방방곡곡 답사도 많이 다니며 전통을 더듬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옛 어르신들의 나무를 다룬 기술과 세심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물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