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OF LIGHT
피에르 보나르와 마르트 드 멜라니
예술가의 빛이 된 뮤즈
글. 유경희(미술평론가)
인생에서 특별한 ‘만남’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매혹적인 터닝포인트다. 우리는 늘 누구를 만나 자신의 영혼이 사로잡히고 매혹되기를 꿈꾼다. 예술가 역시 어느 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적으로 다른 길을 걷는다. 인상주의 시대에 활동한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 역시 마르트 드 멜라니를 만나면서 빛나는 예술적 감성을 키웠다. 그에게 마르트는 창작의 핵
심으로 인도한 근원적인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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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예술적 힘을 가진 화가, 보나르
남프랑스에 있는 보나르의 화실. 이른 아침에 가정부가 꺾어다 놓은 꽃 한 무더기가 탁자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가정부는 “주인님, 왜 꽃을 그리지 않는 거죠?”라고 물었다. 보나르는 “꽃이 시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야 존재감이 생기거든요”라고 말했다. 꽃이 시들어야 존재감이 생긴다고 표현한 보나르의 속내는 어떤 것이었을까? 사실 시든 꽃은 평생 보나르를 억압했다.
하지만 그것은 보나르의 예술에 빛나는 뮤즈가 되어 준 여자 ‘마르트’를 의미한다.
보나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걸었던 인물이다. 나비파(19세기 말 폴 고갱의 영향을 받은 젊은 반인상주의 화가 그룹)의 일원이던 그는 특히 친밀하고 부드러운 실내 정경을 그린 앵티미슴(실내 정경이나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주제를 구하여 사적인 정감을 강조하는 화풍)의 경향을 대표했다. 그의 그림은 당대에도 잘 팔렸고 유명세도 누렸지만, 미술사적으로는 꽤 늦게서야 명성을 얻었다. 오죽하면 동시대 가장 유명한 화가인 피카소가 보나르를 얼치기 화가라고 무시했을까. 피카소는 보나르를 두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화가라고 생각했다. 아방가르드 미술이 조짐을 보이던 시기에 그의 그림은 꽤 진부하고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극치의 몽환적 사랑과 유혹의 세계로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묘한 힘이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에는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해 온 마르트의 영향이 드리워져 있다. 그는 마르트와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도대체 마르트는 누구이며, 보나르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런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까?
피에르 보나르, 「욕실」(1950).
보나르의 그림 속 마르트는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채 자신의 놀이에만 깊이 빠져 있는 어린아이처럼 묘사되어 있다.
묘연한 여자, 마르트를 만나다
보나르는 1893년 파리의 오스망 거리를 지나가다 우연히 마르트를 만났다. 마르트는 미천한 자신의 신분과 나이를 숨기는 등 비밀이 참 많은 묘연한 여자였다. 그래서인지 보나르는 어딘지 미스터리한 마르트가 모델로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를 늘 가까이 두고 그렸는데, 그것이 무려 384점에 이른다. 보나르의 작품 속 그녀는 거의 언제나 벌거벗은 몸으로 목욕 중이다. 특이한 것은 보나르가 마르트의 벗은 몸을 수없이 그렸으면서도 나이든 모습은 단 한 번도 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보나르는 반세기에 걸쳐 그녀를 언제나 ‘젊은 육체’로만 그린 것이다. 마르트는 보나르의 전작에 걸쳐 등장한다. 설령 마르트가 주인공이 아닌 그림에서도 그녀는 마치 유령처럼 출몰한다.
도대체 보나르는 마르트를 왜 이런 모습으로 그렸을까? 그것은 우선 마르트가 건강한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폐 질환뿐만 아니라 피해망상, 강박증, 신경쇠약 등 심리적, 육체적 병을 앓고 있었다. 가령 목욕에 집착하는 것도 그녀의 강박증이 낳은 결과다. 보나르는 그녀를 선택한 죄로 괴로움도 함께 나누어야 했지만, 그녀의 신경증과 강박증은 오히려 그의 예술적 창작력이 타오르도록 했다.
목욕하는 여자는 예술가들이 열정적으로 묘사하고 싶어 하는 영원한 소재다. 부르주아 출신으로 심약하고 소심한 보나르는 모든 것을 마르트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각별히 배려했다. 당시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욕실은 상류층만 누리는 것이었다. 보나르가 이런 욕실이 딸린 별장을 구입한 것도 오로지 마르트를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두려움과 의심이 많았던 마르트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극단적으로 꺼렸다. 가까운 나들이를 할 때조차도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사용했으며, 보나르가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도 의심했다. 그러니 친구들과 가족에게 그녀의 존재는 얼마나 골칫거리였겠는가.
영원히 늙지 않는 그림을 그리다
그림 속 마르트는 어떤 모습인가?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소녀와 같은 얼굴과 자태를 하고 있다. 한 평론가는 “그녀는 한 마리 새 같다. 놀란 듯한 표정, 물에 몸을 담그기를 좋아하는 취향, 날개가 달린 것처럼 사뿐사뿐한 거동”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동거했지만, 보나르는 그녀를 공식적인 부인으로 삼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것은 그들이 만난 지 32년 만인 1925년의 일이었다. 사실 보나르에게는 금발의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마르트와 결혼하기 얼마 전 연인이던 르네 몽샤티에게 작별을 고했다. 약혼녀는 결국 자살했고, 얼마 뒤 보나르는 거의 충동적으로 마르트와 혼인 신고를 했다. 그리고 이미 혼인 신고 전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모두 마르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썼다. 하지만 마르트가 72세에 먼저 세상을 떠난다.
보나르가 본격적으로 욕실 장면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은 마르트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실 보나르가 욕조 속에 길게 누운 마르트의 모습을 처음으로 그린 것은 그들이 긴 동거 생활 끝에 혼인 신고를 한 해다. 이때 마르트의 나이는 56세였다. 그녀가 72세로 죽을 때까지 보나르는 그녀를 언제나 24세의 젊은 육체로만 그렸다. 그는 1920년경 어느 순간부터 마르트가 결코 늙지 않으리라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보나르 덕분에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영원히 늙지 않는 여자로 미술사에 남게 되었다.
피에르 보나르, 「난간 위를 걷는 고양이」(1909).
완벽한 이해 없이도 사랑이 가능하다
마르트는 보나르를 처음 만났을 때도 자신의 나이가 16세라고 거짓말했다. 보나르가 마르트의 법적 이름이 ‘마리아 부르쟁’임을 안 것도 혼인 신고를 할 때였다. 당시 파리의 화류계 여성이나 신분 상승을 꿈꾸던 여성은 귀족에게나 붙는 ‘드de’라는 호칭을 흔히 썼다. 이처럼 마르트라는 여인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감추고 살았다. 보나르의 그림 속 마르트가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채 자신의 놀이에만 깊이 빠져 있는 어린아이처럼 묘사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미스터리한 신경증 여자를 사랑한 보나르는 도대체 어떤 남자였을까? 존 버거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줄 것 같다. “마르트를 향한 헌신의 힘으로 또는 예술가의 재능으로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을 훨씬 깊고 보편적인 진실로 끌어올렸다. 모순과 갈등 속에서 태어난 예술의 전형적인 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사라진 여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녀는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자, 즉 타자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비밀스러우며, 이 타자성 때문에 결국 나로 환원될 수 없고 늘 낯선 자로 남는다.”
이타성, 신비, 낯섦, 생경함, 베일, 환상. 이것이야말로 보나르의 상상력에 빛을 던져 준 마르트의 강력한 무기였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목사인 아버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완벽한 이해가 없어도 완전한 사랑은 가능하다!” 어쩌면 미스터리하고 묘연한 빛이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사랑하는 대상을 지고지순하게 표현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글 유경희
유경희는 미술 잡지 기자로 미술계에 입문했고, 이후 수년간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뉴욕에서 예술 행정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학과 예술론을 가르치는 한편, 대중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