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OF LIGHT
당신의 불꽃은 무엇인가
글. 정덕현(문화평론가) 사진 제공. (주)한화 커뮤니케이션팀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때로는 불꽃 같은 열정, 격정, 환희를 갈구한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빛에 환호하며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공유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기에 불꽃놀이는 더더욱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 열정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심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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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불인가 꽃인가.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하늘 위로 올라가던 불은 정점에서 펑 하고 터지며 순간 꽃이 되어 산화한다. 그 불꽃들은 동시에 흐드러지게 꽃봉오리가 터져 나가는 봄날의 꽃밭을 연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개의 거대한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꽃들이 밤하늘 가득 그려질 때마다 관객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나란히 앉아 사랑을 나누던 연인들도, 한때의 단란함을 즐기던 가족들도, 간만에 여유를 내어 천변을 찾은 직장인들도 모두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그 하늘 위에 새겨지는 꽃들의 축제에 빠져든다. 이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인가. 매일매일 사람에 지쳐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별빛처럼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온 도시인들은 그렇게 밤하늘을 향해 가슴을 편다. 그 가슴속으로 번져 가는 불꽃들이 말을 건넨다. 당신의 불꽃은 무엇인가.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일찍이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운석이 큰 감명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저 아득히 높은 곳’,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은 천상의 신성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이 문장은 하늘이라는 공간이 태초부터 인류에게 부여한 의미를 잘 압축하고 있다. 아마도 원시시대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본 태초의 인류에게 하늘 가득히 쏟아지는 별빛은 두려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안겨 주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의해 거대한 나무가 쪼개져 불타오르는 것을 목격한 인류는 그 하늘의 불꽃에 고개를 숙였으리라. 그것은 천상 아래에 있는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기나긴 세월을 거쳐 온 지금, 우리는 그 하늘을 향해 불꽃을 쏘아 올린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불꽃놀이’에는 인류의 욕망이 묻어난다. 두려움을 아름다움으로, 천상이 부여한 운명을 지상에서의 개척으로 바꾸어 내려는 욕망.
불꽃을 통한 완전한 소통
그런 인류의 근원적 욕망이 묻어나기 때문일까.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불꽃축제를 보면 언어의 장벽도 낯선 이국의 생소함도 그 불꽃 속에서 활활 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정해진 음악에 맞추어 마치 춤을 추듯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그 불꽃의 언어에는 국가도, 민족도, 인종이나 성별도, 나이도 없다.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그 압도적인 아름다운 불꽃의 향연은 수세기 동안 우리 안에 축적되어 온 유전자를 일깨운다. 그리고 우리가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불꽃 하나가 만들어 내는 완전한 소통인 것이다.
해마다 10월 첫째 주 토요일이면 여의도 일대는 불꽃축제를 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특히 관람 명소로 이름난 63빌딩 앞과 이촌 한강공원, 한강대교 중앙 노들섬 등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서울세계불꽃축제. 지난해 10월 12회째로 열린 이 축제는 11만 발 이상의 불꽃을 하늘로 쏘아 올리며 보는 이들을 하나로 만드는 마법의 시간을 만들어 냈다. 각 나라의 특성에 맞는 곡들과 색깔로 선별된 불꽃놀이는 그 자체로 다른 설명 없이 다른 문화에 대한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 이 축제에서 영국 팀은 007 시리즈를 주제로 가져왔고, 중국 팀은 특유의 붉은색과 황금색을 이용한 불꽃을 선보였으며, 우리는 불꽃으로 태극이나 부채 문양을 그려냈다. 그것은 불꽃을 통해 즐기는 문화 소통의 장이었다.
화약 기술의 양면을 담은 불꽃놀이
아마도 우리의 기억 속에 최초로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88올림픽 때 피날레를 장식한 불꽃놀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불꽃놀이는 조선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무선이 화약제조법을 발명한 1373년 중국에서 들어온 화약 기술은 우리나라에서 꽃을 피웠다. 『세종실록』에는 우리의 기술 유출을 두려워한 대신들이 중국 사신들에게 불꽃놀이를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이처럼 불꽃놀이는 화약 기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성격상 ‘불’과 ‘축제’는 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불을 소재로 한 축제는 기원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화약을 활용한 불꽃축제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전쟁터의 신호용으로 쓰이던 것이 7세기 초 수양제때 불꽃놀이가 되었다고 한다. 1240년 화약이 중국에서 아랍으로 전해지면서 불꽃놀이도 함께 전파되었다. 당시 아랍인들은 불꽃놀이를 ‘차이니즈 플라워’라고 불렀다. 유럽에 불꽃놀이를 전파한 이는 중국에서 화약을 가져온 마르코 폴로다. 유럽 최초의 불꽃놀이는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근대적인 의미의 불꽃축제는 1749년 영국 앤 여왕 시절,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 협정 조인 기념식 때 열렸다. 헨델이 작곡한 「왕궁의 불꽃놀이」라는 곡이 당시 불꽃축제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당시의 불꽃축제는 잘못 튄 불씨에 의해 화재가 나면서 막을 내렸다고 한다. 화약과의 연관성이 보여 주듯 불꽃축제는 군사력 과시와도 무관하지 않다. 고려 말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 제조법이 군사용이 아닌 불꽃놀이로 사용된 데는 연희의 목적도 있었지만, 북방 야인들과 일본 왜구들에게 조선의 힘을 보여 주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화약기술을 머금은 불꽃놀이는 이처럼 전쟁과 유희의 양면을 담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불꽃축제
지금 전 세계에서는 크고 작은 불꽃축제가 벌어진다. 올림픽 같은 큰 행사의 부대 행사로 치러지는 것만이 아니라, 온전히 불꽃놀이가 하나의 테마가 되는 축제가 전 세계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해마다 6~8월에 열리는 ‘국제불꽃축제’다. 1985년부터 시작한 이 축제에는 행사가 열리는 9일 동안 무려 230만 명의 관람객이 모여든다고 한다. 우리의 대표적인 불꽃축제로는 ‘부산불꽃축제’, ‘서울세계불꽃축제’,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있다. 부산불꽃축제는 2005년에 열린 APEC 경축 행사로 시작하여 해마다 열린다. 한 번에 6톤이라는 가장 많은 화약을 사용하는 불꽃축제로 이름 나 있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한화가 사회 공헌 사업으로 2000년부터 시작한 축제로, 해마다 10월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다. 포항국제불빛축제는 2004년 포스코가 사회 공헌 사업으로 시작했다. 만일 지구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불꽃들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광경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불꽃은 무엇인가
화약이 가진 파괴적인 힘을 인류는 미학적으로 재해석해 냈다. 그것은 마치 인류의 힘으로 그려 내는 별자리와 다르지 않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막연히 보며 두려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던 인류는, 이제 그 두려움을 떨쳐 내고 미학적으로 하늘을 캔버스 삼아 불꽃으로 별들을 그려 넣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누구나 막연할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삶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그려 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늘로 쏘아 올린 불꽃들이 그 순간에 산화하며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듯이, 우리 각자의 작디작은 삶은 그렇게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며 누군가의 지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불꽃놀이를 보며 스스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쏘아 올릴 불꽃은 무엇인가.
글 정덕현
정덕현은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무엇보다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