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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작품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예술 세계와 만납니다
허상과 실재의 경계에서 다시 태어난 환상
글 제공. 가나아트센터
이전까지 나는 실재하는 현실과 대결함으로써 그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실재한다는 걸 보여주려는데 목적을 두었다. 환영은 그 하나의 주요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건 환영이 현실이자 실재 그 자체가 되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캔버스를 인식판으로 삼아 관념같은 목전에 당장 주어지지 않는 것까지 그리고자 한다. 화면의 앞과 뒤를 포함한 공간 전체는 물론 과거에서 미래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그리고자 한다. - 2014 작가 작업노트
고영훈, Pinks Acrylic on Plaster, Canvas, 160.5×126.5cm, 201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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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훈은 1970년대 초반 극사실주의 회화의 시작을 알렸으며 지금까지 40여 년간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의 대표작가로서 국내외 평단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고영훈은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의 종착이자 그너머 회화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고영훈은 고대 그리스의 파라시오스에서 근세의 얀 반 아이크에 이르는 서양의 재현회화의 전통을 뛰어넘어, (작가가 해석하기에) 솔거가 추구했던 ‘환영의 극한’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환영이 실재가 되고 실재가 환영이 되는, 환영과 실재가 하나라는 큰 깨달음 혹은 최신의 현대철학을 상징하고 있다.
그에게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리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40여 년간의 화업을 통해 테크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며, 작가로서 고영훈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으로의 시간과 그 시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한계를 넘어선 고영훈은 이전의 차가운 물성의 오브제가 아니라, 현실적 체감을 동반하고 있는 분청사기, 살아있는 인물 등 감성적 다양체를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모든 자연의 존재(being)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으며,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현실에 <있음에의 경의>를 표현하고 있다.
회화를 회화성으로서 평가받고자 했던
고영훈의 하이퍼리얼리즘 세계의 응축
고영훈은 1974년 제2회 앙데팡당전에 <이것은 돌입니다>를 출품하여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아트 인터내셔널』의 필자인 조셉 러브(Joseph Love)는 제2회 앙데팡당전을 보고 “팝아트는 하드 엣지 혹은 미니멀 아트 같은 것도 거의 없었다.
초사실주의에 접근한 유일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입구에 커다란 흰 캔버스를 높이 매달아 놓은 것으로 <이것은 돌입니다>라는 표제가 붙은 고영훈의 작품이었다”는 전시 리뷰를 기고한 바 있다. 당시 한국 화단에 미국 하이퍼리얼리즘의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영훈은 개념미술과 오브제에 대한 서양이론과 도가(道家)적이고 선(禪)적인 한국적 요소를 내재한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점이다.
그의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는 회화 속에서 실재와 환영을 엄격히 차별화했던,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로 대표될 수 있는 근대주의적인 시각이나 더 나아가 실재를 해체하려 했던 푸코의 철학에 반한다. 고영훈은 회화로서 구현할 수 있는 극한의 지점까지 밀어붙인 자신만의 하이퍼리얼리즘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를 통해 실재와 환영이 일원화되어 환영이 실재인 듯이 인식될 수 있는 회화의 영역까지 넘어갔다.
고영훈의 신작은 지난 40여 년간 작가가 고수해 온 하이퍼리얼리즘의 정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회화만의 독특한 회화성이 초사실주의적인 형상들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영훈, Stone Book, Acrylic on cloth over hard paper on Panel, 120×163cm, 1989
작가 고영훈
작가 고영훈은 70년대에는 돌을 화면 빈 공간에 띄워 그리다 80년대 들어서 펼쳐진 책 위에 질량을 강화하고 신비한 그림자의 이미지를 동반해서 그려왔다. 90년대에는 돌뿐만 아니라
깃털, 날개, 사진과 같은 기록문이나 수집한 오브제들을 병설하는가 하면 이것들이 돌과 더불어 동등한 의미로 자리매김하는 변모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