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OF HUMANITIES
동서고금의 문학과 예술을 통해 우리의 삶을 폭넓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봄과 함께 날아든 인문학의 향기

예술가들의 고향,
통영 조금 더 따뜻하고 깊게 거닐기

글. 김경집(인문학자) / 사진. 안홍범, 최정선

길고 긴 추위 끝에 한반도에 도착한 봄은 슬그머니 발끝부터 덥히며 대지를 녹인다. 통영의 봄을 깨닫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화가 전혁림의 작품에 통영 앞바다가 있고 작곡가 윤이상이 남긴 선율, 문인 유치환의 시 한 구절이면 통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유난히 풍성한 통영에서는 봄도 느리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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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손글씨로 쓴 편지 받은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편지 받을 일이 아예 없으니 우푯값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엽서를 써본 적도 없다. 그러니 예전 ‘봉함엽서’가 있었다는 말을 이해하는 이도 이젠 거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꽤나 나이 든 축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50대의 나이인데도 그 모든 기억들이 과거의 시간 속으로, 기억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70년대 후반 대학 시절 부산까지 걸어가면서 조치원 우체국에 ‘유치 우편’을 보낸 적이 있다. 아마 이 제도는 당시 편지를 쓰던 이들도 잘 모르는 것일 텐데, 그건 특정한 우체국에 편지를 보내면 일정 기간 보관했다가 수신인이 찾아갈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제도였다.
혹시라도 부산까지 가는 길에 힘들다며 중간에 포기할까 싶어서, 그리고 길에서 편지 받는 위로와 기쁨을 누리기 위해 그 제도를 이용했다. 일주일 전쯤 보냈던 편지를 길 가던 중간에 우체국에서 찾아 읽는 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때처럼 편지를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실시간으로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데 굳이 불편한 편지를 쓸 필요가 없다. 일상에서는 이제 손으로 직접 글 쓰는 일도 별로 없다.
그리운 날엔 편지를 쓰세요
나는 지금도 가방에 엽서를 여러 장 담아둔다. 카페에서 좋은 음악이 나오면 그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을 떠올리고 그에게 짧게 안부를 전한다. 짧은 인사지만 며칠 후 그가 엽서를 받고 하루쯤 즐거워할 것을 상상하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 그리고 그렇게 엽서를 받아줄 사람이 있어서 내가 더 행복하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있는 풍경이지만 어쩌다 길에서 만나는 빨간우체통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예전에는 그렇게 우체통에, 혹은 우체국에 가는 길을 설렘 안고 가던 이들이 지금은 무엇에서 설렘을 느낄까?
편지하면 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청마 유치환이다. 그를 떠올리니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로 시작하는 청마의 시 “행복”이 생각난다. 통영의 하늘은 정말 에메랄드빛이다. 유치환은 통영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통영중앙우체국을 통해서만 무려 5천 통 이상의 편지를 보냈다고 하니 가히 그 양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중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요청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더 멋지지 않을까 싶다. 그는 출근할 때 우체통으로 가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밤새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쓰고 그것을 보내는 길이 얼마나 따뜻하고 설레었을까! 게다가 그 편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청마 유치환 생가

통영으로 향하는 청마의 연서
청마 유치환이 시조시인 운정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는 그가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뜰 때까지 무려 20년이나 이어졌다. 그 사랑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그 고통마저 넘어섰다. 그리고 그 편지들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유부남의 연애편지에 대해 비난보다는 어떻게 그리 지순한 사랑의 편지가 그토록 오래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의 순수함이 얼마나 영롱한지 감탄하고 공감했다. 바로 청마가 세상을 떠난 뒤 바로 그해에 출간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다.
두 사람은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영도는 일찍 결혼하였지만 21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 하나를 키우며 혼자 살았는데 청마는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편지를 썼다. 청마는 기혼자였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3년 동안 이어진 편지에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였다.
수많은 편지가 오갔는데 한국전쟁 때 불타버리고 이후 의 편지를 보관한 게 5천여 통이었다. 그 가운데 200여 편의 편지를 골라 책으로 펴냈다. 우체통을 통해 전해지는 편지는 상대에게 도착하기까지 며칠이 걸린다.
그 사이 애틋함은 더 간절해지고 기다림은 더 깊어진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기다림 때문에 행복하다. 우체국 문을 열 때마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때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했을까!
아마도 시인은 거기에 와서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치고 한참 동안 앉아 있다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 거제도를 가는 길에 통영에 들러 일부러 중앙 우체국을 찾아갔다. 청마가 편지를 들고, 혹은 편지를 받으러 갔던 그 길에 그가 품었던 애틋한 다감함과 그리움의 결을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우체국은 예전처럼 편지를 보내는 곳이 아니라 택배와 금융 업무가 주가 되어 아쉽다.
다시 손글씨로 쓴 편지를 만날 수 있는 이는 행복하다.
빠른 것도 좋지만 느려도 기다리는 마음의 따뜻함을 잃고 사는 것은 얼마나 각박할까. 남해의 바람을 맞으며, 언덕길을 걸으며, 바다를 바라보며 그가 느꼈을 그리움과 연모를 공감하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그런 속마음을 읽어냈을 때 오히려 그의 남성적 기상이 돋보이는 시가 얼마나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는지도 느낄 수 있다.
통영을 맴도는 깊은 인문학의 향기
통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토지>의 작가 박경리다. 그녀는 한국의 여성 작가로는 가장 높이 평가받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박경리의 묘가 바로 통영에 있다. 박경리문학공원, 박경리기념관을 곁에 둔 작가의 묘에서 바라보는 통영 앞바다는 황홀하다. 뜻밖에도 사람들이 이곳을 잘 몰라서 조용한 것도 좋다. 기념관에서 조용히 앉아 작가와 대화하는 것은 통영 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박경리기념관 외관

통영은 청마와 김춘수 같은 시인, 그리고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윤이상 같은 세계적 음악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통영의 많은 학교들의 교가는 대부분 유치환과 윤이상의 이름이 담겨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통영 출신이면서 교사였던 까닭에 그랬을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고향에 대한 그들의 애틋함과 따뜻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윤이상 기념관 외관

윤이상은 현대 클래식음악을 대표하는 세계 5대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에서 숨을 거뒀지만 그를 끝내 지켜낸 힘은 그의 음악이었다.
생전 자신의 음악의 영혼은 통영이라고 한 그의 말에 비춰볼 때 그의 음악과 통영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작은 수산도시 통영은 윤이상으로 인해 수려한 경치와 함께 ‘윤이상 국제콩쿠르’로 아시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전혁림미술관 내부 전시 풍경

예술, 통영을 담아내다
통영에서는 화가 전혁림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서 전혁림은 독특한 색감으로 한국 추상화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색채의 마술사’,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말 그대로 ‘바다의 화가’이다. 통영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청색과 전통 오방색을 즐겨 사용한 그의 작품은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다.
한국적 색면추상의 선구자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의식으로 독자적인 그림 영역을 만든 그의 그림을 보면 현대미술의 전위적 조형방법으로 전통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화가의 미 의식은 통영이라는 공간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가 작업했던 공간이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꼭 방문해볼 곳이다.
많은 이들이 통영을 방문한다. 동피랑 벽화마을도 찾아가고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 걸으며 예향을 담뿍 누린다. 동피랑이란 말도 ‘동쪽 벼랑’에서 유래했고,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평화롭다.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바쁘게 걸을 수 없다.
언제 보아도 예쁜 동피랑 마을의 감동은 통제영 12공방에서 가득 채워진다. 현재 통영에서 예술적 감성을 쉼 없이 뿜어내고 있는 곳이라면 단연 전국 명품명장들이 모인 통제영 12공방일 테다. 명장들의 타오르는 예술혼이 흘깃 보고 지나치는 이들의 발길을 붙든다.
길 떠난 예술이 찾아드는 곳
이러니 통영이야말로 예향(藝鄕)이 아닐 수 없다. 통영의 여인을 사랑했지만 끝내 그 마음을 이루지 못한 시인 백석은 통영 바다를 보며 시를 지었다. 그 마음이 절절해 한편으로 끝낼 수 없었는지 시인은 같은 제목의 시를 또 다시 써내려갔다. 사랑 때문에 찾아든 통영에서 백석은 눈앞에 펼쳐진 통영 바다의 멋과 맛에 다시금 반했다.
볼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풍요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여행이 그저 눈요기, 혀 호강을 위한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다. 그런 여행은 서둘 수도 빠를 수도 없다. 가뜩이나 바쁜 일상을 벗어났으면 느림도 누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걸음의 속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신의 완속, 태도의 완보(緩步)와 완심(緩心)으로 이어져야 한다.
통영에서는 느리게 흐르는 따뜻한 시간이 보장된다.
깊게 거닐며 구경거리, 먹거리 마음껏 누려보자. 그러나 진짜 만나야 할 것은 거기에 살던 예술가들의 흔적과 삶의 정수들이다. 한적한 카페에서 이제는 조금 낯선 손글씨로 짧게 편지를 쓰거나 엽서를 채워 중앙우체국의 빨간 우체통으로 가보자. 청마의 마음을 품어보면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그 달콤한 고백을 따라 하면서. 느리게만 느껴지는 우편의 속도가 우리가 잃고 산 바로 그 시간의 농밀함이려니!
나는 통영에 갈 때마다 청마와 편지가 늘 살갑게 다가 온다. 어쩌면 그 맛에 통영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느리게 살 수 있어야 진짜 달려야 할 때 제대로 뛸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여행도 삶도, 때론 느리게 누려볼 일이다.

글 김경집

김경집은 삶을 세 등분으로 나눠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 쓰며 살기를 꿈꾸는 인문학자이자 작가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해미에 작업실 수연재(樹然齋)에서 세 번째 단계를 누리고 있다.